노자에게 길을 묻는다, 上善若水의 비밀 
 
날짜 : 2007년 11월 04일 (21시 28분)    
 
 
 

이철용 프로필
▲ 1971년, 흑룡강성 목단강시 출생
▲ 청도조선족기업협회
     청양양지회 수석 부회장
▲ 청도미래수처리설비유한회사 대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 爲. “도덕경” 제37장)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 풀이하면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또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위”라고 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다는 말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오해이다. 사실상 “무위”라는 말은 일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되도록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고 리드해 나간다는 말이다.
                                          -머리말을 대신해서
대학시절에 공부를 하면서 한쪽으로는 비즈니스를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창업을 하였다. 2003년 청도에서 조선족으로는 처음으로 수 처리(水處理)회사를 창립하여 지금은 상하이, 베이징, 광주, 위해, 천진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중국 대도시들에 마케팅을 펼치면서 연간 매출액 1,500만원 이상을 올리고 있는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성청지회 수석 부회장 청도미래수처리유한회사 이철용(36세) 대표, 그는 회사의 사훈을 “상선약수, 후덕재물(上善若水, 厚德載物)”이라고 했다.
“상선약수”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말하자면 최고의 선은 물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물은 만물에 생명을 주고 만물을 키우고 만물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물은 절대로 무엇이든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점유하지 않고 주재하지 않는다. 노자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선 역시 물처럼 이 세상에 많은 일을 하고 이 세상에 필요로 하는 자로 되면서도 세상을 주재하지 않고 자기의 소유로 만들지 않고 주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후덕재물”은 주문왕의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땅을 지칭하는 “곤(坤)”괘에 대한 해설에서 “지세곤, 후덕이재물(地勢坤, 厚德以載物)”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뜻인즉 땅은 현묘한 어미와 같이 고상한 덕성으로 만물을 낳고 키워준다는 말이다.
그 사훈이 말하는 내포된 뜻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철용 사장은 무위의 자세로 기업의 확장을 이끌어내고 타자에 대한 편리를 도모함으로 스스로를 키우고 있다.
             무위로 쌓아가는 믿음
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일이 없게 하노라. (“도덕경” 제37장)
이철용 사장은 세계적으로 두번째 큰 언새호(堰塞湖, 화산재로 산골짜기가 막혀서 이루어진 호수)인 경박호가 있고 옛 발해국 도읍지가 자리잡고 있는 동경성에서 태어났다.
물이 맑기로 소문난 동경성. 당나라로부터 발해국,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쭉 이어오면서 기름진 동경성벌에서 맑디 맑은 경박호를 거쳐 흘러내려오는 목단강상류의 물을 먹고 자라난 벼. 그래서 동경성벌에서 생산된 상수입쌀은 황궁에 바치는 공미(貢米)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철용 사장은 물과 수 처리 설비와 어려서 부터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진절머리 나도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난 때문에 1993년 처음으로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골라잡은 품목이 바로 정수(淨水)설비였다.
어쩌면 숙명적이라고 할까, 하지만 숙명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이철용 사장이 대학교를 다닐 때 처음으로 수처리 품목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가 순간적으로 포착한 기회가 중요하기도 했겠지만 젊음과 예지가 차 넘치는 그의 안광이 수처리가 중국 공업화의 발전과 함께 장차 유망한 산업으로 자리매김을 할 것으로 본 것이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생산은 물을 떠날 수 없고 물을 쓰면 오 폐수 처리를 해야 하며 첨단기술일수록 그 생산용수에 대한 요구가 높으며 이와 동시에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이 음료수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그만큼 수 처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1993년부터 수 처리설비를 판매하면서 수 처리회사설립을 준비했던 이철용 사장은 근 10년간 하얼빈, 베이징 등지를 전전(轉戰)하다가 2003년, 청도에 자리잡고 본격적인 수처리설비의 조립, 생산, 판매사업을 벌렸다.
초창기, 아직 직원들이 기술과 판촉자질이 성숙이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이철용 사장은 자기가 직접 수 처리설비가 필요한 기업들을 찾아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판촉을 벌렸다. 그런 과정에서 이철용 사장은 생산과 판매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고객들의 믿음을 사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연해도시에 진출한 조선족들은 누구라 없이 모두 선천적인 열세( 勢)를 가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을 놓고 말하면 조선족들은 비록 같은 혈맥을 이어왔다고는 하지만 중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이고 현지인들도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그만큼 믿음이 적었다. 수시로 이동할 수 있고 요해가 적어 믿음을 줄 수 없고, 또 그만큼 거래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 처리설비는 반도체생산업체나 전자제품생산업체로 놓고 말하면 필수적인 설비였지만 또 그만큼 가격이 다른 상품에 비해 엄청 비쌌다. 그러니 고객들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족회사에 맡겼다가 수 만원, 지어 수십 만원씩 되는 설비의 선불 금을 가지고 달아나지나 않을까, 그런 근심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철용 사장은 믿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청도에서 고급아파트단지로 소문났고 또 한국회사 사장들이 많은 천태(天泰)아파트단지에 집을 사고 사무실도 버젓이 앉혔다. 고객들이 오다를 가지고 믿음이 가지 않아 찾아오면 번듯한 사무실에서 접대하고 집에 모셔 식사도 함께 했다. 따라서 믿음도 서게 되고 하나 둘 고객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고객의 영역은 차츰 확장되어 거물급 고객들도 찾아와 회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차츰 회사가 성장하면서 고객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단가가 수 십만원을 넘어 수백만원이 넘는 수 처리설비 오다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철용 사장은 또 공장을 확장했다. 따라서 고객들은 미래수처리유한회사를 믿을 수 있었고 이철용 사장을 믿을 수 있었다.
믿어주라고 말을 해서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무엇을 보여 주어야 믿어준다는 것을 이철용 사장은 잘 알고 있었다.
고객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철용 사장이 이끄는 미래수처리유한회사는 이미 A/S를 한단계 크게 뛰어 넘어 B/S, 즉 베스트서비스로 고객들을 만족시키고 있으며 25시 누가 어느 때, 어디서든지 다 만족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래수처리유한회사 사무실의 컴퓨터에는 고객들이 사용하고 있는 설비들이 모두 저장되어 있다. 어느 설비의 무슨 부품은 언제 교체해 주어야 하며 어느 회사에서 어느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철용 사장은 고객보다 먼저 알고 고객보다 한발 앞서 서비스를 해준다. 바로 신용과 믿음을 부르짖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서비스와 정확한 방법, 빈틈없는 관리로 고객 스스로가 믿을 수 있게 했고 신용이 스스로 쌓여지게 했던 것이다.
   우수 기업을 목표로 한 마케팅전략
걷기를 잘 하는 자는 흔적을 남기지 아니하고 말을 잘 하는 자는 빈틈이 없고 계산을 잘 하는 자는 산가지(算 ) 가 필요 없고 닫기를 잘 하는 자는 걸지 않아도 열 수가 없고 매듭을 잘 매는 자는 맺히지 않아도 풀지를 못하게 하니라. 하기에 성인(聖人)은 사람을 잘 구하기에 버리는 사람이 없으며 물건을 잘 쓰기에 버리는 물건이 없으니 이를 습명(襲明, 빛이 가득하면서도 빛나지 아니함)이라 하노라. (“도덕경” 제27장)
창업초기 이철용 사장은 베이징에서 부동산개발업체들과 합작을 했었다. 그때 북경에서 고급아파트가 한창 일어설 때이고 고급아파트들에서 일반 용수와 정화수(淨化水)를 함께 공급하는 바람이 불 때라, 이철용 사장은 회사에서 설비를 공급하고 물을 팔아 돈을 벌 계산에서 부동산개발업체들과 합작을 했다. 설비투자가 들어가지 않고 사람들이 정화수를 음용하게 되니 부동산개발업체들에서는 자연 개발원가가 적게 들었고 집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지라 부동산개발업체들은 합작을 선선히 수락했고, 이와 함께 회사의 판매실적은 상승선을 그었다. 그러나 얼마 뒤 이철용 사장은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결제가 문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완비하지 못한 시장체제와 처져있는 시민들의 의식, 그리고 부동산관리회사들의 자체관리, 관리시스템 부족 등 문제와 경영상황으로 결제가 제때에 될 수가 없었다. 결제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판매실적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회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려 경영에 차질을 빚어내게 된다.
이철용 사장은 인차 부동산개발회사들과의 합작을 접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사스(SARS, 非典)가 들이닥치면서 연속 두 번씩이나 이철용 사장은 기업 사활의 고비를 겪게 되었다. 수년간 경험교훈을 바탕으로 시장조사를 하던 중, 이철용 사장은 2003년에 청도로 진출했다. 그리고 기업의 마케팅전략도 완전히 바꾸었다.
돈 많은 사람들의 돈을 벌라는 말이 있다. 오늘 세계적으로 유행되고 있는 럭셔리 바람이 바로 그것이다. 화장품을 판매한다고 하면 그것을 수십만 세트 파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품질 유명브랜드로 만들어 최고가로 팔아 적은 양으로 높은 실적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패션회사에서 일년에 수만 달러씩 하는 옷 수백 벌, 자동차 회사에서 일년에 한대에 백만 달러이상씩 하는  최고급 승용차 몇 십 대,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벌리는 것을 말한다. 이철용 사장은 고급화 전략을 구상했다. 바로 운영이 잘되고 전망이 있고 돈벌이를 잘 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벌렸던 것이다. 반도체 생산업체나 전자제품생산업체들은 생산과정에 반드시 고도의 정화수를 써야 했고, 또 그런 기업들에 쓰는 수 처리 설비들은 가격이 좋았고 한국기업들은 물론, 내국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회사운영이 잘 되어 결제가 잘 되기에 수금이 문제로 되지 않을 것이었다.
이철용 사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고 적중했다. 청도에 들어와서 몇년 되지 않아 이 사장이 이끄는 미래수처리유한공사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상하이, 베이징, 천진, 광주, 위해 등 대도시에 지사를 둔, 연간 매출액이 1500만원에 달하는 중기업으로 성장을 했다.
   곤궁에 빠진 자는 변화를 꾀하거니
곤궁한 자는 변화를 꾀하고 변화를 하게 되면 운이 통하고 운이 통하면 살아날 수 있다. (중국 속담)
청년시절, 이철용 사장은 가난과 가깝게 지내면서 자랐다. 그것도 지지리도 진저리가 나는 가난이었다. 어려서는 배를 불린 적이 거의 없었고 대학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무척 어렵게 지냈으며 창업과정에서 수차 밥마저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이철용 사장이 기업을 하게 된 것은 그의 말을 빈다면 한마디로 “너무 못살아서”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비는 물론, 식비조차 바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철용 사장은 일찍 비즈니스에 발을 들여 놓았다. 정수기회사와 계약을 맺고 회사 제품을 팔아주고 수당금을 받았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비즈니스에 눈을 뜨기도 전에 비즈니스에 몸을 담은 이철용 사장의 생활은 금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손에 남아도는 돈이 있게 되었고 생활에 어려움이 적게 되었고 자기의 생활과 학습비용뿐만 아니라 시골집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형님들의 생활에도 보탬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철용 사장은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만약 내가 회사를 차리고 수처리설비를 판매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수처리설비 시장은 무한한 발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젊디 젊은 23세의 나이에 수처리회사를 차렸다.
옷 한견지 변변히 입지 못하고 도시락 한번 변변히 싸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은 둘째 치고 사업을 시작한 다음에도 이철용 사장은, 그의 말을 빈다면 “밥 먹을 돈조차 없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한번은 수 처리설비를 판매한지 오래 되었으나 설비를 사간 회사에서 결제를 해주지 않았다. 그는 동료와 함께 그 회사를 가보기로 했다. 결제를 재촉하거나 강제결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운영이 어떻게 되는지, 설비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보려 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회사의 사장은 이철용 사장이 돈 받으러 오는 줄 알고 설비를 헐값으로 그냥 던지다시피 팔아버리고 그가 도착하기 전날 저녁에 잠적해버린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철용 사장은 동료와 함께 그 사장이 오기만을 고대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나니 가져간 돈은 다 써버리고, 마지막에는 가두배추 하나를 가지고 둘이서 이틀씩이나 먹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게 인연이었는가 봐요.” 그런 어려움을 당했으면서도 이철용 사장은 그 사장도 너무 힘들어 그랬겠지 라고 하면서 외려 고맙다고 했다. 그 사장이 도망하는 바람에 그 사장을 기다리면서 자기가 부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지기 노인이 말을 잃어버린 격이지요. 돈은 적지 않게 날리었지만, 지금 나에게 아들과 딸을 낳아준, 나와 한평생을 함께 살아갈 와이프를 만나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지요.”
    민족과 문화의 차이, 그리고 우려
순종과 아부 사이가 얼마나 되며 선과 악의 거리가 얼마나 되던가? 남들이 무서워함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황량할손 인생의 갈길은 얼마나 멀고 멀드냐!(“도덕경” 제20장)
이철용 사장이 요즘 고민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의 미래축구팀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인가 하는게 눈앞의 고민이라고 했다. 미래축구팀은 돈이 남아 돌아서 하는 것이 아니였다. 이철용 사장은 축구를 민족을 단합 시킬 수 있는 좋은 스포츠라고 하면서 축구라는 스포츠형식으로 팀웍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갈 수 있고 또 그런 교류과정에서 다른 업체나 사장들과 많은 사상과 관점들을 알게 모르게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축구를 기업문화의 일부로 보았다. 축구는 탁구나 테니스처럼 한 사람의 기술이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11명이 하나로 잘 어울려 움직여야만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 11명이 하나로 어울리려면 훈련도 중요하지만 운동원들 사이에 마음이 서로 통해야 하고 무의식간에 서로 밀어주고 믿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주축 정신이 바로 이런 상호협조와 조화, 그리고 어울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동이 건강한 체질을 만들 듯이 회사도 끊임 없는 운동과 팀웍의 정신으로 성장한다는 게 이철용 사장의 견해였다.
다른 한가지 고민은 아들이 이제 학교갈 때가 되었는데 어디로 보낼 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아들이 학교로 가고 앞으로 또 딸이 학교로 가고, 가슴이 기대로 부풀지만 아버지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직은 조선족들의 경제기반이 약해 할 수 없지만 앞으로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조선족들도 민족발전을 위한 어떤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을 바랬다.
조선족청년들은 배우는데 빠르기는 하지만 인내성이 없는 것이 큰 결함, 그리고 한국회사들에 다니지만 한국인과 중국조선족들 사이 문화의 이질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그의 조선족들에 대한 견해였다.
미래수처리회사는 업종관계로 다른 회사들보다 봉급이 좀 높지만 조선족들은 3년을 견지하는 사람이 적었다. 함께 입사한 한족은 이미 5년이 되여 수처리설비기술을 확실하게 장악해 한달에 5, 6천원을 받고 있지만 2년도 못가 회사에서 나간 조선족청년은 월급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다른 회사로 갔지만 아직까지도 계속 그때 그대로 1500원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돈벌 욕심만 부리고 자기의 능력제고에 힘을 들이지 않은 결과라고 하면서 이철용 사장은 조선족청년들이 더 확실히 자기의 실력을 키울 것을 희망했다.
오늘 미래수처리유한회사는 이미 청도에서 손꼽히는 수 처리회사로 되었다. 하지만 이철용 사장은 항상 겸손했다. 회사를 어느 만큼 키울 것인가?
이미 미국설비와 미국기술로 청도수처리업계에서 정상을 톱고 있으면서도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야지요, 그리고 내가 잘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내가 남에게 확실한 도움을 가져 다 주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지요.”하고 말한다.
이철용 사장은 언제나 무위의 자세로 물같이 겸손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래서 상선약수라고 했던가…
                       

/김명숙 특약기자, 홍군식 특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