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회 <연변문학>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평론

그대와 풍경을 찾아가는 길에서

허동식 시인의 근작시를를 읽고

김영수

 


  주체와 객체의 대결이 아닌 통합을 서정시는 지향한다. 자아의식 속에 반영되는 현실 (像) 속에서 시공간의 통일을 지향하는 서정시의 정신은 이미지 구사를 통하여 결국 세계의 서정적 자아화 혹은 세계와의 조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런 통합의 장을 지향하는 보편적인 시정신에 기반해 아래 허동식 시인의 8편의 시들은 이미지 측면에서나, 정서적 언어사용 측면에서나 바로 대상의 내면화를 취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정신을 여실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본다.

   ‘바이올린, ‘별바람 ‘빛, ‘하늘 ‘풍경, ‘나무 ‘물  식물성적인 순화된 이미지와 조금 ‘글썽거리는 애수와 비교적 밝은 정서 속에서 시인은 내면 그대와 풍경을 찾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생각의 높이가 아닌 가슴의 깊이에서 대상을 바라보며 오랜 방황 끝에 찾게 심적인 인내를 갖추고 대상에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내면화를 이루는 작업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을 추적해온 같은 사물의 근원성에 가치를 두는 아름다운 ‘그대 풍경들에 대한 추구와 그리움들이 그의 시를 서정시의 통합적 구성과 율동으로 이끄는 정조라고 말할 있겠다.

 

  이쁜 바이올린 같은 풍경은/ 어디에 있을까/ 튕겨주면 좋은 이야기를/ 피워올리는 그대는/ 어디에 있을까// 좋은 시문처럼 멋들어진 풍경은/ 얼마나 멀까/ 잠깐 지켜보아도/ 크게만 반짝이고 무성해지는/ 그대의 눈길은/ 얼마나 멀까// 내일도 바람은 펄럭이고/ 뭇꽃은 아우성을 휘날리고

  <풍경과 그대를 찾아가는 길에서> 전문

 

   시에서는 풍경과 그대를 찾아가는 길에서 마치 잠깐 사색에 잠겨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는 같다. 바람이 펄럭이고 아우성을 날리는 못꽃들의 초조한 상황은 오늘도 내일도 전개되지만 풍경과 그대를 만날 가능성은 충분해진다. 바이올린과 같은 풍경과 교감하면 비로서 존재하는 ‘그대, 시인이 바라보는 풍경은 사실 외적인 풍경이 아닌 내적인 풍경과 ‘반짝이고 무성해지는 눈길 보여주는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 접근하는 영혼의 본질인 같다. 이제 바람부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얼머나 멀까라는 의문을 던진다는 것은 이미 풍경과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는 역설의 의미를 유추해 있지 않을까 본다.

 

  고원의 바람은 어딘가 글썽거린다/ 하지만  아래 작은 풀마저도/ 표고(标高)라는 엄포를 무릅쓰고/ 하늘의 한자락을 씹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의 그림자마저도/ 하늘 높이를 감히 첨벙거린다// 햇빛이 허둥지둥 달려오는 지평선에서/ 무엇을 작별해야 하는 걸까/ 무엇을 마중해야 하는 걸까/ 그림자마저 잃어버린 나의 영혼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고원의 하루 –고산초원에서-> 전문

 

  상승을 지향한 시적구조 속에서 투명해지는 영혼의 하루라고 말하기에 앞서 ‘작별 ‘마중 진지하게 고민한 같은 영혼의 혼적들이 ‘글썽거리고 있다. 무엇을 작별하고 마중하기 위해서 고원은 ‘글썽거리는 바람을 품고 ‘풀들과 함께 하늘 높이 달려갈까지난날의 상처와 못난 과거와 인연들과 작별을 고하면서 인간은 새로운 자기안식의 길과 혹은 그대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는가는 본질적인 질문을 상기하게 한다. 그림자마저 비상한 나의 순수 영혼만이 남은 ‘지평선 하늘과 지상이 맞닿아 있는 곳이라는 데서 생명의 심층적 의미와 연결된 그리움을 던져준다.

 

  풀꽃들이 무더기로 방랑하는/ 초원의 여름을 찾으면/ 흰구름이 뭉게뭉게 달려가는 하늘을/ 헐레벌떡 쳐다보게 되어있다/ 삶이라고 자칭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하늘을 번뜩번뜩 빛내이는/ 해와 뭇별들을 거느리려는/ 바람과 그런 이야기들에/ 생각이 머무르게 되어있다/ 사랑이라 하는 것은

  <초원에서> 전문

 

  인간의 삶이란 어찌 보면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인식과 성장과정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쳐왔던 일상 속의 풍경이 경이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마누라를 좋게 지켜주는 눈길 외부세계를 바라볼 경이로움이 덤으로 축복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을 명기해야 것이다. 그리하여 경이로움은 때론 궁극적으로 휴머니즘류의 개념을 초월한 보다 ‘그대 근원적인 사랑의 한순간들을 전광화석처럼 던져주기도 한다

  시인은 시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을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한 같다. 그리하여 오늘날 계절의 윤회 속에서 ‘풀꽃들이 인간의 삶처럼 방랑하는 어느 여름날, ‘초원이란 개방된 공간 속에서 ‘해와 달, 뭇별들과 교감하는 ‘바람  ‘이야기들은 결국 내면의 거울 속에 드러나는 무연(无缘) 사랑이란 이치를 알게 된다.

 

  해빛과 물빛이 함께 빛나고/ 산그림자와 구름이 하모니로 엉킨 풍경에/ 항복할  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시역(视域) 진동하는 풍경을/ 잠간 작별하면/ 청역(听域) 독점하는 물소리도/ 좋은 풍경임을 발견한다/  어늘 /  생명의 언덕에 상륙하여 아우성하던/ 그대의 목소리가 기다려지고/ 허구한 나날을 동행하는 풍경은/ 그대의 사랑임을 알고 소스라친다.

  <청역의 풍경-운남 우선호仙湖)에서-> 전문

 

  이러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무연(无缘) 사랑은 <청역의 풍경> 속에서도 ‘소스라치는 시인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록 생명의 언덕에 올라서 있는 ‘그대 발견하는 내밀한 영역을 접하는 시인은 방황했던 지난날은 결코 허구한 날이 아님을 확인한다. 정결해진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볼 감미로운 접점과 공감을 이루고 가장 자연스러운 무위의 사랑과 아름다움이 다가옴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에 대하여 법정(法顶) 이렇게 적고 있다. 아름다운 사물을 접할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와  대상이 하나가  ,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가장 오묘한 아름다움을 캐낼 있고 만날 있습니다 .

  시인이 대상과 하나를 이루었는지는 없다. 그러나 허구한 나날들의 풍경이 그대의 사랑임을 느끼는 시인의 투명한 감수성은 이미 대상과 하나를 이루려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시인의 내적 탐구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여름밤에 정원을 걷다가/ 은행나무 한그루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칙칙한 외로움을 살면서도/ 작은 설레임이라 하더라도/ 별바람을 열심히 불러오는 모습에/ 잊혀질까 무섭던 그대의 미소가/ 마음에 꿀꺽 떠올랐습니다// 머나먼 행로(行路) 더듬고 있노라면/ 호수가 건물 안의 테블 위에/ 조용히 챙겨진 이쁜 바이올린 같이/ 약속을 보듬는 그대를/ 무작정 만날 수도 있습니다.

  <여름밤 은행나무 아래서> 전문

 

  ‘그대 동일시된 은행나무는 완벽한 하나의 인격체로 나란 존재와 동격을 이룬다. ‘칙칙한 외로움 살지만 밝은 색조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은 은행나무가 지닌 상승 지향의 시적 구조와 그대를 만날 있다는 신사적인 분위기와 안도감 속에서 빛과 푸르름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별바람을 열심히 불러오면서 독립된 개체로서의 성잗을 지향하는 나무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그대의 미소 태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시인은 재차 접한다. 외부세계와 내면의 무수한 접점 속에서 문득 문득 정교하게 ‘보듬어진 약속의 순간들이 시인의 기나긴 심적 여행에서 ‘그대 이미지로 연출되는 같다.

 

  가을인데 노오란 은행나무가/ 낭만의 시인처럼 다가오는 계절인데/ 나도 편지를 쓰고 싶다/ 가난한 마음으로 야윈 시어들을 배열하는/ 게임을 그만두고/ 마치게 푸르던 여름도 접고/ 가을처럼 그윽한 눈길로/ 그대를 지켜보고 싶다/ 우러르던 온갖 허망함을/ 가볍게 작별하는 바람은/ 누구의 옷자락일까/ 펄럭임은 지독하게 성스럽고/ 나를 지켜주는 하늘은/ 그냥 찬연하다.

  <나를 지켜주는 하늘> 전문

 

  ‘은행나무 ‘바람 ‘시어들이 하늘아래서 인격화되어 어우러지는 가을의 풍경화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마음이 가난할 수록 지혜가 아닌 것류의 따위들을 꾸역꾸역 쌓아두고 교만하던 ‘게임 시대와 그에서 비롯되는 경직성과 허망함의 계절은 지난 뒤안길의 이야기다. 경외의 대상으로 인격의 모습을 갖춘 시절이 숙성한 지혜의 눈길 속에서 한결 자유로워진다. 한때의 지독한 방황과 여름의 객기를 그냥 좋게 좋게 보아주던 하늘의 찬연함을 오늘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그대를 지켜볼 줄 아는 내면의 울림들이 가을날에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렁이던 아우성을 버리고/ 다이어트 행렬에 끼어든다/ 시간을 버리는 공간과/ 공간을 버리는 시간이/ 겹쳐지는 //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마누라를/ 좋게 지켜주는 눈길로/ 반짝이는 강물과/ 멀리 산자락들을 일별한다.

  <가을강> 전문

 

  가을 강물이 다이어트를 한다는 의인화수법은 생동하다. 젊은 날의 감성처럼 아우성이던 강물이 자신을 비우고, 시간과 공간마저 서로 버리며 마침내 각자 소실되어 버리는 계절, 그리하여 충만되고 내적인 결실을 맺어주는 시점이다. 젊의 날의 치열했던 초상화가 아닌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마누라 지켜주는 눈길을 가진 인내를 지닌 시인의 초상화가 보여지는 대목이다

 

  날마다 찾아오는 풍경이지만/ 지독한 고독일지도 모른다/ 가슴이라는 이야기로 바라보지만/ 채바퀴 돌아가듯 몰려받는 / 어찌하여 만년을 타오르는 영혼뿐일까/ 문명사 스토리가 읽혀지는 / 이슬빛이 조용한 아침/ 일출은 아닌 보살로 기록된다.

  <일출> 전문

 

  일상의 풍경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시인의 안목이 돋보인다. 삶의 신념, 삶의 가치 등의 좌표점을 시사하는 대목이기기도 하다. 필자는 시는 위의 시들의 총체적 압권이라고 생각하겠다

  매일마다 찾아오는 풍경을 가슴이 아닌 눈으로만 바라보기에 사람들은 고독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생각의 높이가 아닌 가슴의 깊이에서 ‘조용한 이슬빛 차분함으로 바라볼 영혼으로 보여지는 일출을, 수많은 역사와 인간 삶의 희노애락과 최악의 비극과 상황조차 분별없이 바라보며 빛을 던져주는 일출을 ‘보살 인식하는 삶의 현장에 대한 집중력과 각성性)을 높이 사주고 싶다

  끝으로 말하고 싶다. 허동식 시인의 상기시들은 ‘무색여름이란 고뇌의 숲을 지나 나그네의 오랜 방황 끝에 찾아온 바이올린 같은 풍경과 빛들이 찬연한 여름날의 초원과 그윽한 가을 속에 머무르며 향연을 즐기고 있는 같다. 시들에서 보여지는 밝은 이미지와 삶의 본연적 사랑과 이야기들이, 시인의 내밀한 인내와 투명한 감수성들이, 존재인식의 추구와 내적작업들이 서정시 통합지향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일부 언어와 정감적 표현들은 고도로 함축되어 있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대와 풍경을 찾아가는 길에서 느낀 경이로운 순간들이 더욱더 번뜩이는 지성과 절제된 감성의 조합 속에서 명징하고 깊이있게 표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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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프로필

1977년 2월, 흑룡강성 상지시 출생

2004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석사 졸업

국내외 간행물에 다수의 논문과 평론  약간의 시작 발표. 평론 <그대와 풍경을 찾아가는 길에서>로 제39회 <연변문학>문학상 신인상 수상.

현재 산동 옌타이대학 외국어학원 한국어학과 교사로 재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