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도라지>문학상 소설부문상 수상

1회 <민들레컵문학상> 대상 수상작

 

단편소설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

리홍숙

 




  택시가 덜컹거리며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남다른 운치를 자랑하고 있었고 군데군데 등산객들이 많이 드나들었는지 등산길이 거부기 등 무늬처럼 얼기설기 늘여져 있는 게 보인다. 창밖은 날씨가 너무 맑아 청명한 가을하늘은 파란 비닐을 씌운 듯 투명하게 보였다. 나무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나무잎들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만이 둥지를 틀고 있어서 수희는 스카프를 당겨 목에 두르고 눈을 감고 좌석에 몸을 기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깜빡 잠이 들었다 깨여보니 택시는 이미 마을 어구로 통하는 언덕길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였다.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손에 질벅하게 고인다.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맡겼지만 멀미가 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려 수희는 창을 내리고 시원한 바람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고향의 냄새였다.

꼬박 18년 만이였다. 공항에서도 택시를 타고 네시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에 위치한 만큼 수희가 살았던 동네는 아주 볼품없는 작은 시골동네였다. 뻐스도 잡기 힘들었던 어느 시골구석, 수희가 살았던 동네는 마을 사이에 강 하나를 끼고 있어 여름에는 고기잡이를 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며 시골동네소학교를 다녔었다.

손바닥 만해 보이는 학교운동장이 눈에 보이자 수희의 눈에 그렁그렁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코구멍 만한 시골동네에 안되는 가정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었는데 수희아버지는 마을에서도 소문난 애주가였다. 마을 어구 언덕길에 들어서서부터 수희는 주구창창 술을 마시며 비틀대며 잠꼬대처럼 뱉어내던 아버지의 그 잔소리가 귀가에서 쟁쟁 울리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몇번을 이야기를 해야 되겠는가고. 제대로 못해?”

대낮부터 술을 한잔 하고 휘청거리던 아버지가 노기등등해 엄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머리를 조아리며 주섬주섬 땅에 흩어진 고사리를 접시에 주어담는다. 어두운 부엌, 달빛에 너무 일찍 허옇게 머리우에 내리기 시작한 서리가 유표하게 확대가 되여 눈에 들어온다. 창백해진 얼굴로 허겁지겁 정리를 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표독스럽게 변해있었다.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조심허라고 하지 않았나. 제사상에는 정성이 담겨야지. 자식들의 무사태평을 위해 차례를 지내는건데. 머리카락이나 돌이 나오면 조상의 령이 화를 낸다고. 흐이구.”

할아버지는 뒤짐을 지고 헛기침을 하며 아니꼬운 눈길로 허둥거리는 엄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희네 집에서는 삼대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있었는데 추석과 구정, 생일과 기일까지 모두 제사를 지내다보니 일년에도 수십번은 제사음식을 장만해야 했다.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들은 간을 싱겁게 하고 정성을 다해 차려야 되는 음식이라 머리카락이나 쌀에 섞여있는 돌이 발견되면 조상의 령들이 와서 화를 내고 돌아서게 되고 곧이어 집안에 저주가 내린다며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새벽부터 눈두덩이를 잡아뜯으며 그토록 정성들여 준비한 차례상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것이였다.

할머니와 엄마가 눈치를 살피며 엎질러진 접시를 주방에 내갔다가 다시 예쁘게 음식을 담아내오자 할아버지는 근육이 경직이 얼굴로 접시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받아서 차례상을 다시 장식했다. 소주 한잔을 조심스레 따라서 상에 놓고 저가락을 걸쳐놓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절을 했다.

매번 그래왔듯이 제사를 지내고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며 아버지를 불러 음복을 하군 했었는데 수희와 동생은 우에 오른 간식거리들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이불 안에 숨어 기회를 엿보군 했다.

할머니에 따르면 수희네 집안이 유달리 제사에 집착하는 리유가 있다고 했다. 조상 중에 누군가 자식이 없어 대가 끊길가 봐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파헤쳐 산 아래로 굴려버리고 조상의 무덤을 그곳에 앉혔는데 그 뒤로 아들을 봐서 대를 이을 수 있을 뿐 단명한다는 무서운 저주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떠도는 소문에 발끈한 건 바로 수희의 엄마였다. 가끔씩 수희가 자초지종에 대하여 궁금해 엄마에게 질문을 할 때면 엄마는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니 입을 딱 다물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던 어느 밤중에 일어나보니 부엌 수도칸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에미야, 그게 먼 소리냐. 수희 아버지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시내로 이사를 하다니…”

나지막하게 들려오지만 위엄있는 할머니 목소리였다. 문틈을 통하여 내다보니 행여나 누가 들을가 봐 언성을 낮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할머니의 표정은 더더욱 착잡해보였다.

“병원과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지금 수희 아부지 배가 점점 부풀어오르고 있어요. 이번에 동네 소학교에 애들이 여럿이 전학을 간다네요. 아이들을 생각해서에요, 엄니.”

대화를 엿들어보니 시내로 이사를 가자는 엄마의 의견에 집에서는 아무도 찬성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할아버지가 걱정했던 건 땅과 집이였고 아버지는 죽어도 고향에 뼈를 묻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당시 마을에는 외국행 바람이 불어칠 때라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외국으로 시내로 장사를 한다며 마을을 뜨고 있었다. 시대의 트랜드를 따라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수희 엄마는 그런 집안 식구들의 반응에 억이 막혔는지 몇날 며칠동안 구들에 드러누워 랭전을 감행했다. 유교사상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던 전통집안이라 수희 엄마의 이런 태도는 큰 풍파를 몰고 왔다.

“어디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여기 못 떠.”

“당신 병을 치료하려면 시부속병원으로 옮겨야 되요…”

“닥쳐.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먹고 싶은 거 먹게 해주면 낫게 돼있어. 잔말 말고 조상님들이나 잘 모시자고.”

아버지는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예 체념을 듯한 표정으로 대문 앞에 쪽걸상을 펴놓고 엉뎅이를 붙였다. 간경화 복수 증상으로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배는 대여섯달짜리 태아를 밴 임산부의 배 만했고 해빛에 그을린 구리빛 피부는 따갑게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 아래 더욱 붉어보였다.

“조상님들? 그래서 당신이 이렇게 망가진거예요? 그럼 당신은 그렇다 치고 우리 아이들은?”

구들에 이불을 덮어쓰고 몇날 며칠째 누워있던 엄마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아버지의 말에 후다닥 일어나 매섭게 쏘아붙였다. 수희 엄마의 사슴같이 맑은 눈망울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 녀편네가 엊다대고 말버릇이야. 입을 함부로 놀리니까 집구석이 잘 될 수가 있겠어? 남편이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하는 뺨치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며칠동안 쌀 한톨도 입에 넣지 않은 채 축 늘어진 깡마른 수희 엄마의 몸에서는 분노와 서러움이 소용돌이쳤다. 입술을 피가 날듯이 깨물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더니 휘청이던 수희 아버지를 밀어젖혔다.

“당신 뜻 대로 혼자 모시고 살든지 말든지. 새끼 내가 데리고 갈게요. 죽어도 다른 사람 손에는 못 맡겨.”

엄마는 우당탕탕 구들을 밟고 내려와 끌신을 걸치기도 바쁘게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그렇게 뛰쳐나간 엄마가 돌아온 것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였다. 낡아 너덜너덜한 삽작문이 삐걱하고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휘청이며 들어섰다. 그 그림자는 이내 수도칸에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푸푸하며 세수를 하고 웃옷을 벗어 팔에 걸치고는 수희가 자는 방에 들어섰다. 수희의 엄마였다. 수희는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할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몸에서는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웃옷을 아래목에 내려놓더니 엄마가 수희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구들에 털썩하고 드러누웠다. 차갑고 축축한 것이 수희의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수세미처럼 비쩍 마르고 터실터실 갈라터진 손으로 수희의 얼굴을 어루쓸며 엄마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였다.

“어서 숨 막히는 곳을 벗어나야 해. 여기를 벗어나야 해.”

엄마는 조곤조곤 누구와 대화하듯 나지막한 소리로 끊임없이 속삭이다 많이 답답한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낮게 오열을 했다. 수희는 코끝이 시큰거리는 걸 겨우겨우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느끼고 있는 숨 막히다는 그 올가미, 수희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점이였다가 점점 손바닥 만해졌고 그 뒤로는 아예 수희의 목을 노리는 듯 커다란 사이즈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튿날이였다. 끌신만 끌고 뛰쳐나간 엄마가 돌아오자 집식구들은 너나 할것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런 식구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아니면 식구들의 침묵을 묵인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침 일찍 일어난 엄마가 결심을 내린 듯 군데군데 모여있던 가정기물들을 수소문해 헐값에 팔아넘기더니 추호의 망설임이 없이 뜻 대로 시골의 살림집까지 다 팔아넘겼고 며칠 지나지 않아 수희네 가족은 그 길로 시내로 이사를 했다. 낡은 봉고차에 얼마 남지 않은 살림도구들을 싣고 덜컹거리며 시골집을 떠날 때 수희 엄마의 찌프려졌던 미간은 다리미에 다린 듯 반듯하게 펴져있었다. 허나 반대로 수희네를 태운 봉고차가 마을 어구를 벗어날 때 쯤 수희 아버지가 차를 멈춰세우더니 차에서 내려 언덕길을 올라갔었다.

아마 이쯤이였던 같다. 언덕을 내려오며 허탈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곳…

수희는 택시기사에게 잠시 세워달라는 말을 건네고 택시에서 내려 아버지가 걸었던 언덕길을 따라 발걸음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수희가 살고 있던 동네로 올라가는 길은 지금은 재개발에 들어가 단풍이 붉게 불타오르며 관광객들에게 요염하게 유혹을 던지는 유명한 단풍명소로 탈바꿈되여 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만 해도 비가 오면 시누런 흙탕물이 튕기던 그 길, 지금은 가을의 정취가 다분하게 풍기는 구비구비 단풍길을 내려다보며 수희는 가슴을 열고 힘껏 고향의 냄새를 들이켜 보았다. 도시의 공기에서 도무지 느껴볼 수 없는 상큼한 가을의 향기가 코끝으로부터 깊숙이 페부로 스며들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잠들어있던 세포를 깨우고 있다. 도시에서 물 들었던 혼탁한 공기들이 온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수희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보았다. 가을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랬고 발밑에서 사락사락 마른 단풍잎이 기분 좋게 부서지고 있다.

수희가 아주 어렸을 때에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지만 행동으로 챙겨줄 만큼 자상했었다. 또한 기억 속에 아버지는 재간둥이였다. 평소에 말수가 별로 없던 아버지는 간혹가다 말문이 트여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 쉼없이 구미가 당기게 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술을 곤죽이 되도록 마셨을 때였다. 수희를 옆에 앉힌 채 술을 꿀처럼 맛갈스레 들이키며 터프한 경상도사투리로 어디서 들은 듯한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풀어낼 때면 수희는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들에 귀를 바짝 기울이군 했었다. 그런 술군, 이야기군 아버지 덕분에 수희는 4대 고전소설을 눈으로 읽었던 게 아니라 귀로 들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수전일을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납을 녹여 그물에 매달 납덩이를 만들고 쉼없이 얼기설기 엮었던 그물 밑에 조롱조롱 매달아서 수제그물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깊은 못이나 강을 찾아다니면서 그물을 쳤는데 망둥어나 손바닥 만한 붕어, 버들치들이 그물 안에서 팔딱거리군 했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아버지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수희의 뇌리 속에 올똘히 떠오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를 만난 것은 바로 가을에 있었던 가까운 친구의 시집출간회 뒤풀이 파티에서였다. 각 잡지사 편집과 작가들이 함께한 자리, 야외 바비큐 파티가 끝나고 연회석에서 거나하게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이 하나둘씩 짝이 묶어져 도란도란 속삭이자 수희는 와인잔을 거머쥐고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젊음이 들끓고 있는 창밖 대학거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고 보니 어떤 남자가 와인잔을 들고 마치 뭔가 수희에게 들켜버린 듯한 머쓱한 표정으로 수희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남자를 향해 수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합석해도 될까요?”

수희의 대답을 기다리기 바쁘게 남자는 그녀의 맞은켠에 착석을 하고 앉더니 아무 말없이 반쯤 비여있는 술잔에 와인을 채워주었다. 짙은 눈섭과 깊은 눈동자, 두툼한 입술 특히 술을 따를 때 작은 손동작 하나하나에 섬세함이 묻어났다. 남자는 잔을 들어 짠하고 소리나게 부딪혀왔고 수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그득 담긴 술을 조용히 비워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 이런 분위기가 익숙치 않습니다. 자리를 옮길까요?”

한참을 말없이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넣던 남자가 수희의 손에서 와인잔을 빼앗아 테이블 우에 올려놓고 이렇게 그녀에게 당돌한 건의를 해왔다.

시골이라는 단어에 동질감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처음 낯선 남자를 순순히 따라간다는 사실이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하는 내성적인 수희에게 있어서 너무 생소한 거였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도 들이키면 속이 뻥 뚫리는 소주를 제쳐두고 폼을 잡고 우아하게 와인잔을 기울이고 사용하기 편한 숟가락과 저가락 대신 나이프와 포크를 쓰는 그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였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것처럼 남자가 그를 데리고 곳은 기가 막히게도 문어구부터 구수한 곱창냄새가 진동을 하는 막창구이집이였다.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활 풀어헤치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막창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소주잔을 연거퍼 굽내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함이 피부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였다.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소중했던 맞춤형 차잔을 다시 찾은 듯한 미묘한 느낌, 마치도 아주 오래 전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분위기는 너무 편안해서 수희는 뜬금없이 행여나 오래 전 기억 속에서 잊어버렸던 지인이나 혹은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창이 아닐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술이 몇고패 돌자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대신 미소로 화답을 하는 수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 보았던 작품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어필을 하고 있었는데 작품을 말하는 그의 눈은 야생마처럼 빛나고 있었다. 남자의 작품해독시각은 섬세하고 예민한 수희의 감성에 거칠고 저돌적으로 사정없이 불어닥쳐 할퀴는 회오리바람처럼 충격을 안겨주었다.

작품이야기가 그렇게 오고 가던 중에 남자는 문득 수희가 글을 보며 똑같은 상처의 냄새를 맡았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똑같은 상처의 냄새라는 그 말에 후둑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들이킨 물 한모금에 사래 걸려 연거퍼 숨이 넘어갈 듯 콜록거리는 수희를 바라보며 남자는 너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소리내며 웃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웃음이였다. 그 웃음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춘우(春雨)라며 소개를 해왔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봄비는 무슨,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네.’

남자와 헤여져 집으로 향하는 , 남자를 닮은 듯한 가을비가 투덕투덕 내리고 있었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수희의 아버지가 그랬다. 가을비처럼… 가끔씩 찌그러진 창가에 쪽걸상을 놓고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었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흠뻑 맞을 거지만 수희는 그냥 걷고 싶었다. 남자친구 준이가 알면 감기에 걸리면 또 누구를 고생시킬려고 그러냐며 호되게 꾸중을 하겠지만 그날만큼은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마치도 향긋한 국화차 한잔을 들이킨 뒤 입안에 달큰하다가 뒤맛은 약간 씁쓰레한 여향이 감돌았던 것처럼 남자의 그 독특한 향기가 가을비처럼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다. 남자의 오목한 눈에 슬픔이 그득 담겨져 있었다.

수희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준이는 말이 없지만 수희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남자였다. 풍족하고 유복한 집안의 막내로 태여나 유감없이 좋은 교육을 받았고 인성이 바르고 이름만큼 잘생긴 남자였다. 수희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젊은 시절 덕을 많이 쌓아서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만큼 준이는 홀로 있는 수희 엄마를 아들처럼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허나 수희에게는 남자가 주는 안전감만큼 심장이 욱신거리는 설레임은 없었다.

만남 이후로 그는 자주 수희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어떤 때는 아무 련락도 없이 수희가 출근하는 사무실 근처에 와서 그냥 하루종일 서성일 때도 있었다.

수희와 봄비라는 남자의 만남은 그렇게 이어졌다. 위험한 만남이였다. 수희 자신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마치 끝이 내려다보이지 않는 아찔한 벼랑 끝에서 몸에 피트 되는 섹시한 발레복을 입고 몸을 솟구치며 우아한 발레를 추고 있는 듯한 위태로운 느낌이였다.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는 상황에 나타난 남자이지만 만남에서 수희에게 모든 오픈해서일가. 그 뒤로는 아주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왔다. 보고 싶다며 수희를 불러내놓고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늘 침묵을 지켰는데 수희가 적막함을 견디지 못해 가끔씩 배꼽 잡는 롱담을 한마디씩 던질 때면 남자도 즐거운 듯 씨익 한번 웃어줄 뿐 박장대소를 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면 그는 곧장 소주병을 땄고 한두병의 알콜이 들어간 뒤에는 몽롱해진 정신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며 수희에 대한 감정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후에 일이였지만 남자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술로 허송세월을 하던 집착이 심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풀어내는 그를 보며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마냥 가슴이 욱신거리며 통증이 일었다. 눈물이 소리없이 조용히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 순간 수희는 살그머니 다가가 두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남자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 물론 사랑이라고 리성적으로 단정 지을 사이는 없었다. 마치 어항 안에 물고기가 산소가 부족하여 입을 벌리고 몸부림을 칠 때 아무 생각없이 입을 대고 인공호흡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처럼 자신이 그에 대한 감정도 그런 종류라 믿고 싶었다. 박애주의자인가? 수희는 피씩 허구프게 웃었다.

남자의 입에서 냄새가 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옛말을 해줄 때 풍겼던 익숙한 냄새였다.

매번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입에서 알콜 냄새를 풍길 때면 문득 뇌리에 또다시 아버지가 오롯이 떠올랐다. 수희가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생기가 넘치던 아버지였는데 병마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그런 활기찬 모습이 가뭇없이 사라져있었다.

이른 모내기철이 되면 가난에 시달렸던 수희의 엄마는 삯일을 하느라 외지에 나가 있었는데 때가 됐는데도 돌아오면 할머니를 못살게 굴었다.

“내 몸이 이제 썩었다고 안 온대. 이제 외간남자 찾아서 갔어…”

서글픈 눈빛으로 이렇게 울먹거리기 일쑤였고 우울해져 가기만 했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용하다는 점집을 누벼가며 점을 치고 방토를 하는 할머니와 고모가 점괘를 받아오고는 자주 한숨을 쉬는 걸 목격할 수 있었기에 수희 아버지의 병환은 점점 깊어갔다.

그해 모내기철이 끝나자 수희의 엄마는 천여원 남짓이 되는 삯을 받아서 집에 돌아왔다. 아픈 자신을 버리고 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가 돌아오자 수희 아버지의 수척한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러기도 잠시, 모내기를 하느라 손발이 다 붓고 허리까지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엄마한테 잔소리와 투정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수희가 견딜 없었던 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아버지의 병적 증세였다. 당시 엄마는 학교근처에서 전화박스를 구매해서 공용전화로 돈을 벌여 들였는데 벌어들이는 전화비에 담배 판 값에 그리고 밤낮으로 부업을 해서 번 돈을 다 때려 합쳐도 매일 술 한독씩 사들이고 약값을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오는 어느 새벽이였다. 그날도 수희 아버지는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부엌을 향해 걸어들어가 술독을 더듬거렸다. 배는 이미 만삭이 된 임산부처럼 부풀어올라 호스에 의존하여 배속의 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퉁퉁 부어 재빛이 된 손이 이리저리 술독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을 발견한 수희 엄마가 아픈 허리를 짚고 구들에 내려서서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왜 술이 없어?”

술독이 거덜나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수희 아버지가 나지막하지만 위엄이 있는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수희는 겁에 질려 미닫이문 뒤로 몸을 숨겼다.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표독스럽게 아버지를 쏘아보고 있는 엄마의 위엄어린 얼굴이 보였다.

“왜 없겠어. 당신이 다 마셨지.”

“나 한잔만 줘.”

손을 덜덜 떨며 초췌하게 찌그러진 아버지의 모습에서 슬픔과 서러움이 뚝뚝 흘러나왔다.

고분고분하던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달라져있었다. 아버지가 마시던 술병을 울타리 밖으로 던져 깨뜨리는가 하면 할아버지가 자식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겠다며 향을 피워 문 앞에 꽂아놓으면 어느새 뽑아 땅에 던지고 가차없이 발로 밟아 뭉개버렸다. 제사는 더구나 그랬다. 시내로 이사 나온 뒤 엄마는 조상의 령패며 제사에 관한 모든 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엄마는 이미 구습과 풍속 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때 퀭하게 꺼져 들어갔던 아버지의 눈빛을 수희는 오래도록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지독한 외로움의 냄새를 풍기는 남자… 수희는 몸을 돌려 남자를 끌어안고 희고 긴 손을 내밀어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구멍이 뚫려 찬바람이 휭하고 휩쓸고 지나갔을 그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그 남자와 눈을 맞췄다. 메마른 우물처럼 푹 꺼져있던 남자의 눈동자에는 어느덧 수희의 그림자로 꽈악 채워져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령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취방에서 둘 사이 사랑의 향기가 물씬물씬 피여오르고 모닥불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두 사람의 몸이 겹쳐져 한몸을 이루었을 때 남자는 세상 모든 것을 차지한 듯 희열에 겨워 야수처럼 포효를 했고 수희는 블록을 제자리에 맞춰놓은 듯한 성취감과 온몸으로 전해지는 전률에 감격에 겨워 몸을 떨었다.

그렇게 사람의 만남은 점점 진지해졌다. 자전거로 데이트를 하고 손을 잡고 거닐다 싸구려 길거리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가끔씩은 가까운 강에 낚시를 가기도 하며 둘은 아기자기한 데이트를 즐겼다.

그는 말이 없었지만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고 쉼없이 수희에게 사랑을 갈구했다. 글을 쓰는 일과 작품을 분석하는 걸 제외하고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고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남자, 미래에 대하여 담론하게 되면 늘 피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그의 습관들이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졌으나 즐거웠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수희는 점점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고리타분한 걸 좋아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세상에 대하여 소극적인 남자의 그런 태도는 자기만의 틀을 만들어 수희를 점점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가두고 있었고 또 사랑이 쌓여가는 만큼 그가 수희에 대한 집착은 점점 심해져갔다.

전화 한통만이라도 루락하고 받으면 청천벽력이 떨어졌고 모임이 있어 잠간 얼굴을 보게 되면 전화가 연거퍼 줄쳐 들이닥쳤으며 급기야 무서운 집착들은 수희의 모든 행동 반경을 간섭하기까지 이르렀다.

사이 갈등이 깊어지자 남자는 수희를 알기 전보다 마시는 차수가 훨씬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희에게 뭔가 퍼부으려고 하다가 말문이 막힐 때면 어김없이 소주병을 찾았고 글을 쓰는 이외 대부분의 시간은 술을 마시고 수희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일들을 반복했다.

한번은 회사의 회식자리가 있는 , 크게 틀어놓은 음악 때문에 전화를 못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야밤에 찾아온 남자가 니가 뭔데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수희의 목을 조르기도 했었다.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 번했던 아찔한 상황,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수희의 모습에 정신을 차렸는지 남자는 갑자기 순한 양이 되여 그 자리에 드러눕더니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한 일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자학을 하고 사과를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피페해지고 야위여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수희는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막혔다.

수희가 남자와의 관계를 털어놓고 준이와의 결혼약속을 깨고자 계획을 하고 있을 즈음이였다. 그녀의 엄마가 딸이 근무하는 회사로 찾아왔다. 세월의 모진 풍파에 밭고랑 같은 주름투성이인 엄마의 얼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수희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망설였다.

테이블 우에 놓인 커피 두잔이 식어갈 때까지 사람 사이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수척해진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희의 엄마가 스푼을 들어 커피잔을 휘휘 젓더니 후루룩하고 국을 들이마시듯 커피를 들이켰다. 곧이어 아무 맛도 없다는 듯 엄마의 표정이 잔뜩 구겨져진 채로 스푼을 테이블 우에 내려놓았다.

“결혼은 맞는 상대와 해야 돼…”

낮지만 위엄이 있는 목소리에 수희는 몸을 움츠렸다. 아무 말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잡는 그녀를 바라보며 엄마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끌리는 사람과 내게 맞는 사람은 별개야.”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수희는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눈앞에 앉은 딸의 마음을 투명유리알처럼 훤히 꿰뚫고 있는 듯 착잡한 표정이였다. 어렸을 적 눈이 많았던 수희네 동네, 매번 눈이 펑펑 쏟아져 시골학교로 통하는 길이 막힐 때면 엄마는 앞서서 성큼성큼 발자국을 내며 걷고 수희는 엄마가 뚜렷하게 내리찍은 발자국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씩 내디디던 기억이 났다.

“엄마처럼 살지 마. 령혼을 갉아먹는 일이야.”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눈물을 감춰보느라 고개를 돌린 수희에게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목이 타는 듯 맛없는 커피를 끊임없이 입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단풍잎이 쭈욱 예쁘게 깔려있는 언덕을 톺아오르며 수희는 나지막하게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아버지는 그때 고향에 대한 미련을 여기 묻고 갔을가? 무엇을 묻어버리고 갔기에 그렇게 허탈한 표정이였을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희는 준이와의 결혼 전에 꼭 한번 고향땅을 밟고 아버지를 뵙고 싶었다.

수희에게 아버지는 가끔씩 맑게 개였던 하늘이였고 구멍이 숭숭 새는 지붕이였다. 물론 장대비가 쏟아지면 비방울 하나 막아주지 못하고 엄동설한 맵짠 강추위 한번 막아내지 못하는 허술한 지붕이였지만 그 지붕마저 날아갔을 때 살아갈 리유를 잃어버린 듯 갑자기 허무해졌었다. 그래서 퀭하게 꺼져 들어갔던 그 눈빛을 더욱더 잊어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튼실한 지붕 찾아갈게요, 아버지.”

단풍잎이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는 모든 비워내서인가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렇게 모든 비우고 이듬해면 또다시 새파란 잎이 펴지고 록음이 울창하게 우거지겠지.

입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수희는 씽씽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묵은 짐을 벗은 듯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 발밑에 깔린 단풍잎이 썩어 땅속으로 스며들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빈 나무가지마다 그 양분을 빨아들여 연두빛 나무잎이 매달리는 봄이 무르익을 때쯤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발걸음을 재우쳤다.

정오의 태양이 눈부신 빛을 휘뿌려주어 단풍숲은 더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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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숙 프로필

닉네임 수선화향기

1981 11 25 길림성 서란 출생

동북재경대학 금융학부 졸업

료녕신문에 수필 "가시있는 인생이고 싶다 " 발표하면서 등단.  지금까지 , 수필, 중단편소설 다수 발표.

무역업종사, 온라인꽃방운영

연변작가협회 회원, 청도작가협회 부회장  소설분과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