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 효사랑응모 특별상 수상작

 

효사랑의 수요와 표현 형식의 변화 

박영희 

 



자고로 우리민족은 효사랑을 으뜸가는 예의로 간주해 왔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어린이를 사랑하는 효사랑 전통문화는 사회의 발전과 문명의 발달과 함께 모진 세례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사회가 발달되어 그 어떤 새변화를 가져 오든지 효사랑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효사랑은 개인의 도덕수양의 기본이고 또 “사람으로서의  기본”이며 ”천륜의 기본”이라고도 한다.

지금 우리 신변을 둘러보면 최근 개혁개방과 더불어 한국으로의 대량 진출로 인하여 전통적인 가정공능에 변화가  생기면서 주관적 원인 혹은  객관적 원인으로 효사랑  관념이 회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효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이제 곧 도래하게 되는 노령화시대와 더불어  우리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 앞에 놓인 과제로서 누구나  겪어야 할  회피할 수 없는 가정문제로 된다.

효사랑의  본질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지만  시대의 경제발전변화로 하여 효사랑의 표현형식에는 새로운  변화가 동반한다. 사회발전의 천지개벽변화와 개개인 집집의 가정정황이 천태만상이니 형식 또한 변할 수밖에 없다.

몇천년 , 중국 유교사상의 “효”로부터 공자,맹자의 “효덕”, “백현효선”, “효경애중”(百善孝先 ,孝敬爱重)의 탄생을 배경으로 그때는 부모에게 100% 순종하고 부모가 세상을 하직하면 3년을 씻지 않고 가까이에서 지키는 것이 효도의 찬양이었고  인덕이었다.

어릴 끼니를 걱정하던 고난의 시절, 외가집에 놀러 갔다가  마을의 잔치집에 갔던 외삼촌이 떡 몇쪼각, 사탕 두알을 종이에 싸가지고 돌아와서 철부지 아들의 눈을 피해 누워있는 외할머니의 베개 밑에  슬그머니 넣어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개혁개방 얼마 , 우리 마을에는 위암판결을 받은 아버지를 모시고 평생의 소원이었던 북경유람을 해드린 친구가 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잊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양을 받고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노부무님께 해외여행 시키고 집을 사줬다는 사람들도 있다. 돈이 있다 하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야말로 부모효도에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몇년 전에 이야기 한편이 생각난다. 한 기자가 어느 편벽한 산골에 이름난 효자가 있다 하여 찾아 떠났다. 그 마을에 더벅머리 총각이 허름한 초가집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하루 동안 산에서 나무를 해서  등에 지고  돌아온 아들을 저녁이 되니 노모가  발을 씻어 주었다. 기자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효자라면 어머니의 발을 씻어 드려야 하는데 도리어 어머니가 너의 발을 씻느냐고 물었더니 이것이 어머님의 소원이란다. 어머니는  아들의 발을 씻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이 기뻐하는 일, 소원을 다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하여 인근에서는 그를  효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별로  납득이 잘 안 되었지만 세세히 음미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들이 하루일을 끝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왔을 때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발을 씻어줄 때 아들이 저도 모르게 피곤이 사라지고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부모의 즐거움은 나 자신보다 자식의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이때 어머니 눈에는 이 억대 사나이가 된 아들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어리광 어린아이로  보일 것이다. 어머니는 발을 씻으면서  지난날의 갓난아기 때의 쬐꼬만 발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무지 자호감을 느낄 것이다. 친혈육간의  피부 접촉의 친밀감으로 마음이 든든하고  안전감을 느낄 것이다.

귀국 첫해, 우리부부는 고향에 계시는 시부모님을 모셔왔다.  15년을 우리집에서 보내시다가 86세를 일기로 사망하신 시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즐거워하는 일은 아들이 저녁마다  뒷잔등을 맛사지해 드리는 것이었다. 몇십년 전부터 골다공증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신 시아버지는 매일 지통약을 식사하듯 끊지 않았고  허리디스크 페쇄주사를 때때로  맞았지만 가장 선호하는 것이 그래도 아들이 저녁마다 뒷잔등을 按摩刮痧 해주 는 것이었다. 때론 밖에서 일보고 늦게 돌아오면 잠 못 이루고 기다리군 하셨다. 맛사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약손”으로 뒷잔등을 만져주기를  바라시는 것이었다.

부모가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일을 하고  부모의 바램과 소원을 풀어 드리는 것,   이것이 우리들이 말하는 전통적인 오리지날  효사랑이 아닐까 싶어진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고독을 두려워하고 안전감을 필요로 한다. 고독불안과 두려움은  약자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어릴 때는 집이 아무리 가난하여도 엄마의 사랑과 손길이 느껴지는 곳에 있으면 아이는 배를 곯아도 행복하다. 하지만 교육시설 즉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르다.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미소가 없이 적막한 환경에서 피부접촉이 없이 자랐기에 항상 정서가 불안정하다. 고아원에서 의식주는 크게 문제로 되지 않지만 주마등처럼 바뀌는 친구들의 얼굴들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과 무서움이 항상 성장과정에 동반된다. 

고독불안과 두려움은 약자인 노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있다. 효사랑은 약자에게 가장 절실히 수요된다. 아기와 노인은 사회의 약자이다. 중장년시기에 생각지 못한 허다한 불편들이  70세80세 이상되면  하나둘 생기기 마련이다. 신체가 나날이 쇠태되어가고 몸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수시로 아픔에 시달릴 때 노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마음이 취약해지고 공허해 한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불안정서로 해  친인들의 따뜻한 손길과 효도를 수요한다.

사람들은 ”때가 되지 않으면 모른다. ”당해 봐야 안다”, ”늙으면 애가 된다”라고 말한다.   노년기에는 어린애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신변에 있어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기를  원한다. 더 좋기는 부드러운  미소로 두눈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친인들이 신변에 있으면 좋지만 이 조건을 만족시킬수 있는 가정이 별로 많지 않다. 반대로 오늘날 경쟁이 치렬한 경제 발전시대에 지금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페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중장년기는 효사랑을  해야 하는 중임을 지고 있다. 아래로는 자기의 아들딸을 길러야 하고 우로는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장년기가 사업에서 성과를 내야 할 가장 빠쁜 관건시기이다. 하기에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별로 없다. 부모들도 이 시기를 경과했기에 충분이 이해한다.  

 90년대 일본 체류기간 나는 대학생들이 전문 노인들의 말동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하루에 두시간 좌우로 집에 찾아가서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면서 수요되는 것을 직접 해결해주거나 불편상황을 가족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노인들이 가장 수요 되는 것은 돈도 물질도 좋지만 존재감 안전감이다.  아들딸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점과 곤난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가 수시로 도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노년을 양로시설에서 보내던  집에서 보내던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시대의 경제 발전과 인식수평의 향상으로 하여 사람들의 요구와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지점에서 우리  부모님들은 무엇을 소원하는가? 우리 부모들의  생각과 바람은 무엇인가를 수시로 알아가려 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려 애쓰는 것이 의연히 현지점에서 가장 큰 효사랑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할머니는 내가 시집 때까지 한집에 함께 살았고 99세에 세상을 뜨시였다. 시집가서는  장기환자 시어머니와 5년, 시아버지와 15년을 함께 지냈다. 3년전 86세의 시아버지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나는 지금 시어머니, 할머니로 불리우고 있다. 이러고 보니  소년기와 청중장년기에 할머니, 어머니, 시어머니와 한집에서 함께 있으면서  인생살이  모습을 보아왔고  나 또한  뒤를 이어 노년기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연령의 증가와 함께 생각이 바뀌고 효에 대한  수요도 달라진다. 돈만 있으면 노년은 행복하고 돈만 드리면 부모님께 효도로 생각하던 때가 나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점 너무 많다. 아들딸들이 아무리 효자효녀라 해도  부모에 대한 효사랑은 손으로 꼽을 수 있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은 수자로 헤아릴 수 없이 바다 같이 깊고 넓은 것이다.

부모가 일상생활상 자립능력이 있을 때는 자식에 대한 효의 기대치가 높지 않다. 다만  자식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부모의 가장큰 소원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현시대의 선진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수시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수시로 사랑스러운 미소 띤 얼굴로 문안을 주고 받으면 그것으로 마음의  안위를 느끼고 만족한다. 거기에 만약 자식들이 조건이 되어 소비돈을 주고 함께 명승지를 놀러가는 등 함께 할 수 있으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최대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부모가 일상생활상 자립 혹은 자립상실기의 노년은  다르다. 이때가 되면 지난날 소유했던 높은 관리직위 총명재질 학위와 관계없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수시로 불안 공허 고독 무서움에 직면한다. 진정한 효도는 이때로 부터라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자식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먼곳 혹은 신변에서 지켜 보고 수시로 대화를 나누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는 갖은 방법을 강구해 소원을 들어주고 곤난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년기에 있게 되는 고독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순리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노년을 마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이 시기는 돈을 주는 것보다  마음 담은 물건을 드리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더욱 좋기는 수시로 부모님께  따뜻한 손길과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것이 더 값지다. 

공자의 학생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무었을 효라고 하는가고, 공자는 “色难”이라고 대답했다. 효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 “色难”이다. 다시 말하면 시종 일관 마음 속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화기애애하고 애정이 넘치는  얼굴로 부모를 대하고 공경하는 것. 이것이 가장 힘들다. 바로 이것이 효의 정신이다.

돈으로 없는 따뜻한 효사랑을 우리 부모들은 더욱 기대한다.

 

* 2019년 11월 중국조선족 “효사랑”응모 특별상수상작


---------------------------------------------------------

박영희 프로필

1957 12 출생.

1982 7 연변대학 화학학부 졸업. 2017 12 청도농업대학 정년퇴직.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