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왕초보 식당하던 날들


전향미

                                                                            


한국에서 식당 서빙을 해본 경력 때문에, 남편이 꾸린 보신탕집에 채용되어(능글) 2년이나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장사에는 자신도 없고, 감각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나를 유능한 일꾼으로 착각하고 선발해준 남편에게 질질 끌려가던 날들이다.  

주방 주자도 모르는 내가 식당을 한다고 선포하자, 20년동안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셋째 언니가 혀를 차며 날아왔다. 언니에게 특별 지도를 받으며 알려주는 대로 조목조목 적으니 제법 두툼한 요리책이 되었다.

“식당 장사가 쉽지 않을 거야. 그러나 알면 간단해.” 용기를 주는 말에도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시범 영업을 한다고 써붙인 , 손님 몇 팀이 쫙 들어와서, 곤경을 치렀다. 준비도 제대로 안해놓고 우왕좌왕하면서 시범 영업은 왜 하냐고 손님들이 꿍지렁댔고, 미안한 마음에 모든 음식값을 무료로 하고 커피 한잔씩 타드리면서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던 그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굽석해진 허리가 아마 그때부터였으리라. (자조)

보신탕집 로반냥으로 임명됐으니, 임기중에 그럴싸한 성과를 내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초짜 로반냥은 식당 창업사이트를 밥먹듯이 들락날락 거리며 조언을 구하러 다녔다. 그중 <맛있는 창업>사이트에서 교과서적이 아닌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은듯 하다. 행복한 처방전, 꼴값 훈수, 간결한 처방전, 따라 하기만 하면 대박날 것 같다.

그러나 장사란 것이 녹록지는 않았다. 장사에서 먹는 장사가 제일 쉽다고 누가 말했던가?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다나면, 알고도 모를 것이 사람이다. 웃기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하다. 법원에서 한자리 하신다는 손님이 있다. 오실 때마다 나를 교육시킨다.  “小全, 너네 식당은 뭐나 다 좋은데. 한 가지가 흠이야. 까짓 10원 20원 깎아주는거 재미없어. 파격적으로 깎아줘야 해. 파격적으로.”

맙소사. 법원 아버님, 어떻게 더 해드려야 할까요?(깐죽) 개 장사 개뿔도 남는거 없습니더. 매번마다 술에 타서 마시는 홍초는 그냥 달라 하시고, 개고기도 수북이 담아내오라 하시고 깻잎도 무자비하게 많이 리필하시면서 말입니다. 깻잎이 얼마나 비싼지 알랑가몰라. 청도에서는 조선족이나 한국사람들이 먹는 거는 뭐나 다 곱으로 비싸단 말씀 이외다. 저도 먹고살자고 식당 하는거 아닙니까. (깐죽깐죽)

혀끝에서 맴도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웃기만 하다가, 주방장이 알려준 대책대로 음식상에 나간 모든것을 에누리없이 계산에 넣고, 파격적으로 깎아주었더니, 법원에서 일하시는 분 답게 바로 알아차리고 찔러버린다.   

“小全, 너 이러면 안 되, 거기서 거기잖아.”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금액을 깎아 드리지 않으면 죄를 짓는듯한 분위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처방전이 나오기까지 법을 하시는 이 분에게는 속수무책이다.

영업에 약한 로반냥은 입도 둔하다. 요리 문맹인데다 대화의 기술도 없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손님 왈: 茄子는 뭐고 茄子는 뭐입니까?

. 茄子是, 茄子是的입니다.

가지 요리 맛있겠지요?

. 맛있게 하면 맛있고, 맛없게 하면 맛이 없는 거지요 뭘. 흐허  

회사 밥을 하는 어느 아줌마는 직원들이 싱겁다 짜다 타발을 하면 <싱거우면 소금 더 넣고, 짜면 물 좀 타면 된다>고 당당하게 얘기한다는데, 그 아줌마의 응대 화법도 내 뺨을 후려칠 정도는 된다.

말이 딸리니 밝은 표정과 친절한 서비스를 내세우지만, 보신탕집 장사는 들쑥날쑥 오락가락이다.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듯 떼 지어 몰려 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파리채 휘날리며 비들비들한 파리 몇 마리 잡고 있는 날도 있었다.

일이 서툴고 마음은 급하고, 뭔가 해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 막막하고, 이렇게 몇 해를 보낼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던 날들이었다. 준비도 안됐는데 손님들이 들이닥쳐, 깜짝 놀라 일어나 보면, 어두컴컴한 집에서 꿈을 꾸고 있었고, 꼭 돈을 바쳐야 할 곳이 있었는데 깜박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식은땀 흘리다가 깨어나면 역시 집에서 꾸는 꿈이었다. 처음 식당을 하면서 잠재의식 속에 항상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듯 하다.

23만원을 주고 새 차를 샀다는 손님에게 존경 가득 축복 가득 눈길을 건네고는, 그것이 비굴해 보였다는 자책감과 분노에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고, 예약을 자꾸 어기는 친구때문에 또 혼자 화를 내기도 하면서, 예민해있는 로반냥의 신경이 안쓰럽다.

머리카락은 왜서 반찬 속에 숨어있다가 손님 앞에서 나오는지, 머리에 붙어있는 머리칼은 점점 적어지고, 허리는 더욱 굽어진다.

“퇴근시간 다됐는데, 미안합니다” 하면서 들어오시는 손님을 거절 못하고 저녁 12시까지 가게에 앉아 꺼벅꺼벅 조을던 날은 또 얼마였던지?

식당장사를 벌린 로반에게 불만이 가득한 로반냥은 한달에 번쯤은 청도 해변가로 무작정 달려가군 했다. 검푸른 바다 앞에 앉아 건어물을 쭉쭉 찢어먹으며, 동네방네 전화질을 해대다가 해가 기울 즈음이면 식당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올려 쳐다보던 하늘은 참으로 맑고 푸르렀지. 연중무휴 식당 로반냥인 나에게 바닷가 휴가를 마련해주신 남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남편의 욕지거리 섞인 훈계가 없었다면 아름다운 바닷가로 달아나서 맛있는 건어물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내가 없으면 삐걱거릴것 같은 식당이 나의 부재에도 지극히 정상적인 영업이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먹고살기 힘든 세월에, 어렵게 벌려놓은 음식장사, 참을 인자를 이마에 새기고 열심히 나아가야지. 드넓은 바다는 이렇게 알려주었었다.  

참으로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힘들었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손님과의 전쟁, 종업원들과의 전쟁, 남편과의 전쟁,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훈련받는 로반냥은 전쟁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좀씩 장사에 취미를 붙이고, 불만이 적어지고 로반을 향한 고음 연습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임이 틀림없다. 마음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지니까 말이다. 입에 침 튕기며 난리를 치다가도, 세상은 참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불쑥 들면서, 금새로 웃음을 푹푹 터치군 했다.

책에서 주워들은 서비스 정신을 종업원들에게 교육 시키고, 언니에게 물어서 메뉴 개발도 열심히 하고, 화장실은 항상 은은한 향이 풍기게 하고, 계절 따라 화초를 교체하여 분위기를 바꾸는 등 적극적인 개혁을 시도해 나갔던 추억이 아름답다.  

2년을 넘긴 후 보신탕집 이야기는 무난하게 사명을 완성하고 막을 내렸다. (능청) 나의 식당 장사 체험기도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고생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은 점과 성격에 맞는 장사 아이템이 생긴 것이 원인이 됐다.

왕초보 식당하던 날들도 이젠 옛말이 됐고 추억이 됐다.  

갈길은 멀고 막막하기만 했던 그제날의 추억, 돌이켜보면  그래도 아름다운 건, 젊은 날의 무식과 패기가 불러온 색다른 경험으로 인생이 한층 더 다채로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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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미 프로필

1971년 11월 길림 서란 출생

1996년 장춘중의학원 졸업

2013년 “연변문학”에 처녀작 “바다와 중년의 그리고 친구” 발표.

흑룡강신문 개혁개방40주년기념 “환문학상” 수필 대상, 제3회 "애심성컵" 전국조선족녀성 생활수기 가작상, <동포문학 3호> “안민문학상” 수필 우수상,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법무부 외국동포 수기 우수상,

현재까지 수기, 수필 소설 다수 발표

연변작가협회 회원. 청도작가협회 부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