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개장집 사람과 개이야기


전향미


 

                                                                

개장집 이야기에 개가 빠질 없다. 개 말만 들어도 내 귀가 쫑긋해진다.

청도에서 2년 동안 개장집을 했으니 개와 인연이 깊은 셈이다. 장사 거리를 찾아 헤매던 나와 남편은 빈 가게가 나오자 무작정 계약부터 했고, 아는게 개밖에 없는지라 개고기를 팔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가슴이 뿌듯했다.

식당 문을 열기만 하면 떼돈을 버는 줄로 알았다. 왕초보의 좌충우돌 식당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우리를 개로반, 개로반냥이라고 불렀다. 개 소리만 나오면 우리는 활짝 웃었다. 개와 관련된 밥벌이를 하고 있었고 또 유달리 개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소학교 5학년이었던 딸애는 개에 대한 집착이 더 강했다.

어느날 딸애의 책가방에서 꾸깃꾸깃해진 종이장 장을 발견하고 가슴이 섬뜩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불쌍한 개를 잡아서 팔아먹고, 엄마도 웃으며 같이 팔고 있으니, 벌 받아 죽을 것이다!!!”

죽을 (死)자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식용견이 따로 있고, 우리는 그 장사를 하는 것뿐이라고 구구히 설명을 해줬더니, 딸 얼굴이 조금은 밝아지는 눈치다.

딸애는 종류를 척척 알아맞혔고, 개 우는 소리도 곧잘 냈다. 개가 들어도 혀를 찰 정도였다.

식당과 가까운 곳에 인민광장이 있다. 딸애는 그곳을 수없이 펄럭거리며 개들의 이름을 거침없이 불러댔고 주인들과 친분을 맺고 狗友라고 소개하며 식당에 데려오기도 했다.

소심한 딸애가 개를 통해 생면부지의 어른들과 정감을 나눌 있는 친구가 되는 것을 보면서 개가 때로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잘 안되는데 개라는 녀석은 아주 거뜬히 해내는 것이다.

사람과 개가 PK대결을 한다면? 하고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잠겨본 적도 있었는데 어느날 그 답을 얻은 듯하다.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듯 한꺼번에 쳐들어온 날이었다. 한참 정신없이 돌아치다가 한숨 돌리며 손님상을 둘러보는데 그중 한 식탁에서 오십대쯤 돼보이는 산동 남자 두분이 그릇을 싹싹 비우고 트림까지 껄껄 하고 있었다. 내가 웃음을 빼물고 다가가서 후식 뭐로 하실랍니까?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식혜 드릴까요? 따끈하고 구수한 커피 드릴까요? 했더니 싫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수)

그분들은 화창한 날씨임에도 잔뜩 주워입고 비오듯 흘리셨다. 내가 뒤따라 나가면서 “우리 집 개고기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개고기 좋아. 그런데 로반냥 사람이 더 좋아”라고 하신다. 어깨가 으쓱해져서 “사람이 개보다 더 좋단 말씀입니까?”했더니, 하늘을 향해 꺼이꺼이 웃어제낀다.(유머) 아무렴 그렇겠지. 개와 PK를 한다면 내가 낫겠지. 이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조본산의 소품 볼때 웃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 남자다. 개도 표정이 무궁무진하다고 했거늘. 어느 책에서 말이다.

인간들은 항상 사람들을 개하고 비교하군 한다. 개보다 못한 놈, 개보다 더한 놈, 개보다 나은 놈, 개가 알아들었으면 얼마나 서러워 할 것인가. 개들이 싸울땐 “야, 이 사람같은 놈아.” 하지 않을까. 하긴 인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개를 인간의 높이로 띄워주는게 아닐까. 비교 상대가 된다는 것은 동질, 동격, 동등하다는 얘기로 된다.  

때로는 개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장집을 하면서 딸애의 성화에 못이겨 친구 집 개를 빌려다 길렀었다. 그런데 옆 가게 사람들이 소시지를 사먹이고 목욕을 시켜줘도 꼭 주인을 찾아 내 곁으로 오는게 바로 멍멍이다. 개 이름도 딱히 없어서 <야, 개야 이리 와라.> 하고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무슨 말을 할듯말듯 갸웃갸웃,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때면 개로 보이기 전에 사람으로 보인다. 녀석과 노닥거리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아픈 마음이 치유된다.

개의 생도 힘들고 괴로울때가 많을진대, 우리 인간들에 의해 즐겁고 행복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쯤 생각하니 개를 삶아 파는 내가 가증스럽고, 어린 딸애가 비분한 심정으로 내갈겨썼을 그 문구가 이해되기도 했다.

이제 개는 사람 이상으로 우리들의 생활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어 개라는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철리)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보험회사 직원들  열여명이 우르르 쓸어 들어왔다. 배가 고팠는지 다들 말없이 먹기에만 바빴다. 주방에서 새 요리가 나오자 내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공손하게 여쭈었다. “개들은 한곳에 모아놓읍시다(狗放一起).” 식탁우에 조금씩 남은 개고기 요리를 한접시에 모아놓겠다는거다.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열여명의 폭소가 터졌다. 조본산의 소품 볼때보다 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개가 참 유머러스하다. 똑똑한 어른들을 웃길 수 있는 개에게 박수를 보낸다.

개만 사람을 웃기는 것이 아니다. 개의 엄마라고 자처하는 나도 저그만치 웃기는 여자다. 무식해서이다.

아줌마! 하고 손님이 부른다. 청도는 조선족과 한국사람이 많아서 산동 한족들도 우리말 몇마디 쯤은 알고있다. 아줌마라니? 참말로 고약하게 듣기 싫네잉. 그러나 히히 허허 웃으며 달려간다.

“당신들 조선말 잘하네요.”

아줌마, 있나?

, 있다말다요. 총알 속도로 깻잎을 가져다 드린다.

泰山一枝 있나?

, 있어요. 있어. 빛의 속도로 볼펜을 갖다 드린다.

손님들이 눈을 멀뚱거린다. 담배를 꺼내 보인다.

아줌마! 烟담배 모르나? 태산 담배 모르나?

? 담배 말하는거였어? 뿌즈또아.

손님이 “젓갈 주세요.” 하는데 젓가락 가져다준 여자가 바로 개 엄마로 불리우는 나다.

산동말은 죽으라는지 살라는지 한마디도 알아들으면서도 . 어 녜. 진지하게 머리를 주억거리는 여자도 나다.

남자 손님이 씩씩하게 걸어들어온다. 한국분 같기도 하고, 한족 같기도 하고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서 오세요.”했다가 했다가 바로 안녕하세요 한다. 입은 입대로 아프고 눈은 눈대로 머쓱해지는 여자가 또 나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개와 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식하지만 진솔함이 풍기지 않는가? 바보같지만 사랑스럽지 않은가? (익살)

굵직하게 생긴 젊은 남자 손님이 계산대앞에 섰다.

“맛있게 드셨어요? 155원입니다.”

“엥? 5원도 받아 먹어요?” 덩치답게 황소눈이 벌어질대로 벌어진다.

내가 받아서 먹다니? 개도 안먹는 돈을 받아서 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나는 얼굴이 지지벌게서 “개고기는 마진이 별로 없습니다. 삶아놓으면 절반 팍 줄어들어요.” 묻지도 않는 해석을 구차하게 한다. 마진이 적길래 5원도 받아 먹으려 했다는 변명인가? 몽둥이에 맞아 깨깽깽대는 개처럼 궁색해지고 처참해지는  자신을 본다.(자조)

에이, 개코같은 장사 하느라 육신이 아프고 심신이 피곤하다. 개들은 우리처럼 공자왈 맹자왈 복잡한 언어를 쓰지 않으니깐, 덜 힘들겠지 싶다.

그러나 개장집 하면서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슴 따뜻한 추억도 많다. 입에 침방울 휘날리며 바락바락 화를 내다가도 금세로 웃음이 푹푹 터져나오군 한다. 친구들은 나에게 도그박사라는 멋진 이름도 지어줬다. 정말이지 마음이 벅차오르는 이름이었다. 나도 박사가 되다니 말이다.   

도그박사는 지금도 커피 한잔에 감동할 있는 한족 기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커피 한잔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며 자주 찾아주시는 분이다. 어쩌면 서비스 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우리와 다른 모습때문에서였을가? 우리는 사소한 일에 감사를 표할 수 있는지, 문득 미국교수의 저서 “이 고기는 먹지 마라”라는 책의 한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보다 개에게 주는 것이 더 훌륭한 행동이라는 말도 있다. 인간은 은혜를 쉽게 잊지만 개는 은혜에 감사하며 친절을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에게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들어 감사의 표시 합니다

이렇게 나는 개장집을 하는 2년동안 개생과 인생을 두루 읽어보려고 나름 신경 썼다. 개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천성이라고 한다. 다시한번 우리 개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지)

그리고 개야, 미안, 정말 미안하구나.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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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미 프로필

1971년 11월 길림 서란 출생

1996년 장춘중의학원 졸업

2013년 “연변문학”에 처녀작 “바다와 중년의 그리고 친구” 발표.

흑룡강신문 개혁개방40주년기념 “환문학상” 수필 대상, 제3회 "애심성컵" 전국조선족녀성 생활수기 가작상, <동포문학 3호> “안민문학상” 수필 우수상,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법무부 외국동포 수기 우수상,

현재까지 수기, 수필 소설 다수 발표

연변작가협회 회원. 청도작가협회 부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