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기업 성공시대 (2)

 

 

세상에 불가능한 꿈은 없다
칭다오윤미전자유한회사 전일수 사장

 

 


프로필 :
전일수(35)
1979년 흑룡강성 영안시 와룡조선족향 영산촌출생
1997년 영안조선족중학교 졸업
1997년~1999년 칭다오대학외국어센터에서 영어공부
2000년~2003년 칭다오 모 한국기업 근무
2003년말부터 창업
2004년 10월 칭다오우성전자유한회사 설립, 사장
2009년 청양서 찌머로 이주하면서 칭다오윤미전자유한회사로 이름 변경
2011년 칭다오금원신노무회사 설립, 사장
2013년 우창전자유한회사 인수합병, 사장
2014년 칭다오영안조선족향우회 부회장

 

 

칭다오윤미전자유한회사 전일수 사장은 가전제품용 변압기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인류가 생존하는데 변압기 없어서는 안된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3개 회사를 경영하는데 총 연간 매출액은 6000만 위안, 향후 3년내에 3억 위안 매출을 실현하고, 더 나아가 상장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전일수 사장은  “세상에 불가능한 꿈은 없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꿈은 꾸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
지금 다수 젊은이들은 고생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 사장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는 선조들의 일리있는 말을 실천에 옮겼다.
학교문을 나와 한국 기업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전 사장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 있다는 것이 열정과 헌신뿐이었다.
첫 한국기업에 입사할 때 한국사장이 입사동기를 물어보았다. 당시 전 사장은 거침없이 “고생을 피하지 않고 여기서 살아남을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봉급을 얼마 줄건가부터 묻는데 비장한 각오만 얘기하니 남다른데가 있었다. 한국사장은 그를 채용했다. 당시 전 사장은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마지막에 문을 잠그고 현장을 떠났다. 그때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하는 생각이 전 사장의 머리를 꽉 차지하고 있었다. 전 사장은 “지금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자신을 안위했다. 전 사장의 열정과 헌신을 지켜보던 한국사장은 6개월후 계장으로 승진시켰고 1년만에 과장으로 승진시켰다. 전 직원이 350명되는 회사에서 1년안에 4단계 승진하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전 사장은 노동자들 앞에 나서 아침조회할 때 처음에는 다리도 떨렸는데 차츰차츰 신심도 생기고 중국어 실력도 늘었다고 한다.
한국회사에서 총관리를 책임졌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성장했다. 그 이유로 한국회사사장은 불안심은 쌓여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전 사장은 한달간 휴식후 24살의 어린 나이에  직장을 찾아다녔다. 총경리 혹은 공장장직에 도전했다. 당시 총경리 혹은 공장장의 봉급이 3000위안이었다. 면접시 전 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8000위안 봉급을 요구했다. 나이에 비해 요구가 너무 높다고 ‘퇴박’ 맞았다. 그때마다 전 사장은 써도 안보고 능력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며 옹고집을 부렸다. 결국 생각대로 안되자 창업하기에 나섰다. 어떻게 보면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된셈이다.

 

 

역경을 모질게 이겨내다  
“눈물에 백옥은 더 희여지고, 역경속에서 의지는 더 굳어지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전일수 사장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듯 하다.
전 사장은 창업을 기획하고 2003년 23만 위안을 주고 이촌에 구매했던 아파트를 45만 위안에 판매했다. 그리고 지모에 아파트 두채를 사고 나머지 여유돈 10만 위안을 가지고 소소한 일부터 시작했다. 전기온돌판넬, 보일러, 장식 등 일을 했었다.
2003년 공장을 임대하고 10명 노동자들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월 4~5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전 사장은 재미가 좋았었다며 만족감을 느꼈다. 2007년부터 인건비 상승 원인으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2009년 노동자는 10명으로부터 50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4~5배 늘어났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한때 포기를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환률차액에서 150만 위안의 손해를 보았다. 그간 모아두었던 자금은 ‘고갈’되고 친구들한테 돈을 빌리게 되었다. 번돈 다 날리고 도리여 빚까지 걸머지게 되었다. 당시 전 사장의 나이가 29살이었는데 어른들이 늘 말하는 “아홉고개를 넘기기 힘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마다 어려울 때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는 집에 생활비도 없었다. 가끔 우울증에 시달렸다. 밤에 자는데 30분 눈감았다 뜬다. 한번은 3층 집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자살까지 시도했었는데 자는 아내와 딸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부모님과 아내가 아무말없이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부모님과 아내, 딸 생각하면서 다시 털고 일어났다. 아마 어젯날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동산재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전 사장은 말한다.

 

제2의 성공시대를 열다
전 사장은 많은 고민끝에 2010년부터 생산방식을 전환했다. 2010년 전까지는 임가공을 했었는데 그후로는 OEM완제품생산으로 전환했다.
당시 한국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자재구매 가격이 중국 기업들보다 높았다. 전 사장은 여기서 틈새시장을 포착하고 OEM완제품생산을 선언했다.
우선 자재공급상을 찾아 다니며 인건비, 관리비 등 계산서를 내놓으며 적정한 수준에서 가격을 조정하자고 건의했다. 전 사장의 계산서를 보고 자재 공급상들도 거절을 못했다. 아니면 바이어를 잃게 되니말이다. 자재 공급상들도 공생하자고 합의했다.
전 사장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 두채 가운데서 한채를 팔고, 또 집 담보대출도 받았다. 자재 공급상들이 도주를 우려해 현금결재를 요구했다. 점차 신용이 생기자 외상을 주었다. 자재공급 문제를 해결하자 한국기업을 찾아가 완제품을 납품하겠다고 건의했다. 전 사장의 설명을 듣고 한국기업 사장은 품질보증이 가능한가, 저질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는가고 물었다. 전 사장은 모든걸 보증하겠다고 승낙했다. 한해 두해 거래를 하면서 신용이 생기자 해마다 오더가 늘어났다.
전 사장은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밤낮없이 실험을 했다.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노동자들한테 품질교육, 작업교육을 시켰다. 또 불량품을 감소하기 위해 각종 조치를  강구했다.
현재 윤미회사에서 생산하는 가전제품용 변압기는 주로 세탁기에 들어간다. 2차밴드로  삼성, LG 등 세탁기에도 들어간다고 한다. 현재 70% 제품을 현지 한국기업에 납품하고 30%는 한국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전 사장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기때문에 한국기업들도 자체의 생존을 찾게 되었다. 기업을 한단계 생존에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성공했다. 기업이 안정을 되찾자 2011년에는 노무회사를 설립해 인력난을 해결하고 노동자 대오를 안정시켜 기업의 안정적인 생산을 담보할 수 있었다. 현재 16여개 한국기업에 연간 200~250명의 인력을 송출하고 있다.
2013년에는 한국 동선생산업체인 칭다오저우창전자회사를 인수합병했다. 바로 자신이  근무했고, 또 자기 손으로 세웠던 기업인만큼 감회가 깊었다. 전 사장은 그 회사를 인수했을 때 가장 자호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자호감과 성공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전 사장은 한주일에 한번씩 등산 혹은 낚시하러 다닌다며 매번 등산할 때 최고봉까지 올라갔을 때가 만족감을 느낀다며 쵸몰라마봉를 정복하는 날이 꿈이라고 한다.
2013년에는 사업확장으로 건평이 3000제곱미터 되는 곳에서 6000제곱미터 되는 곳으로 이주했고 기숙사도 마련했다. 현재 본공장에 55명, 6개 분공장에 100명 직원을 두고 있다.
전 사장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끝까지 견지하고 이겨내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고 말한다.

 

희망을 심어주라
전 사장은 성공조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힘이 들어도 꾸준히 견지하라. 또 어려움이 있을 때 빨리 돌파구를 찾으라. 그리고 사람관리를 잘 해야 한다며 이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단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관리를 잘못하면 좋은 오더가 있어도 돈을 벌지 못한다”고 덧붙었다.
임가공을 할 때는 바이어 눈치를 보며 살았는데 이젠 자신의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 사장은 부단히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된다며 현재는 자체 브랜드 ‘효자 안마기’를 생산하고 있다.
전 사장은 건전한 회사를 키우려면 건전한 직원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사장은 회사발전을 위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주어야 가능한데 직원들한테 희망을 심어주어야 동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회사의 발전이 무궁무진하다는 비전을 제시하라고 말한다.
전 사장은 모든 일에서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성과가 있을 때 직원들이 성공감을 느끼도록 했다. 모든 관리직원들에게 등산카드를 발급해주어 매주같이 등산하며 등산과정에서 직원들과 감정교류를 한다. 그리고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 한봉을 정복한 성공감을 느끼게 했다. 관리직의 봉급은 칭다오지역의 외자기업 보다 높게 책정해주었다.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전일수 사장은 “타향에 와있는 조선족 모두가 우리민족의 문화와 민족혼을 이어가기 바란다”며 이것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이수봉 박영만기자 hljcfb@163.com

 

사진설명: 전일수 사장(좌)이 생산현장에서 가전제품용 변압기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