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과 워크숍 특집        
 
날짜 : 2008년 10월 28일 (12시 20분)     
 
 
 

편자의 말
지난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청도시 동방항공호텔에서 (청도)제13회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과 워크숍이 개최되었다.이번 회의에서는 개혁개방 30년간 조선족들이 거둔 빛나는 성과 및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부족점을 전면 진맥하고 아울러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과 조선족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양상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하고 정비했다.본지는 이번 회의에서 기조발언을 한 5명 전문가의 견해를 싣는다.지면상 제한으로 발췌식으로 실음을 밝히면서 여러 전문가들의 양해를 바라는 동시 조선족사회의 뜨거운 논쟁을 기대한다.   

 

개혁개방 30년,조선족사회의 변화와 발전
중앙민족대학 교수,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회장 황유복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이하는 중국은 30년 전에 비해 GDP 67배의 성장을 이룩하여 세계 제3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다.2007년 중국 국내생산 총액은 24.66만억위안에 달하였는데 이 수자는 1978년의 67배이다.
이러한 발전은 단순한 경상지수의 대폭상승만이 아닌 일련의 광범하고 심각한 변혁이다.30년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은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체제로부터 활력이 넘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변, 페쇄 반 페쇄 상태로부터 전방위로 세계경제에 융합하는 위대한 전번을 성공적으로 실현하였다.
조선족 사회도 예외가 아닌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중국조선족사회는 미증유의 충격을 받으면서 상품경제시대에서는 제한된 땅에서 얻는 수확으로는 도저히 잘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수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게 되었다.1992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조선족사회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 한국 경제인들의 중국진출 붐에 따라 조선족들은 베이징,천진,심양,대련,청도,상하이,광주 등 연해개발지역으로 진출하게 된다.90년대의 또 다른 추세는 한국 노무의 붐이었다. 수많은 농민들이 "코리언드림"의 유혹에 끌러 한국으로 몰려가게 되었다.이처럼 조선족사회가 전통적인 농업경제를 탈피하고 도시경제에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우선 일인당 평균 경제수입의 증가를 실현할 수 있었다.조선족 전체의 경제수입 실태를 추출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나 개별지역 통계에서 우리는 그 전반을 감지할 수 있다.예를 들면 2006년 연변자치주에서 외국에 노무 나간 사람들이 연변에 부쳐온 돈은 10억 달러에 육박했고 휴대해 들어온 돈까지 합치면 20억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수입의 증가를 실현하기 위해 조선족사회는 많은 귀중한 것들을 상실하게 되었다."조선족의 문화영토"로 인정되던 조선족 마을의 공동화(空洞化)와 해체, 그리고 그에 따르는 조선민족학교의 페쇄, 민족정체성의 혼돈, 아울러 민족공동체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는 전통적 가치관을 잃어가고 있다.
30년 전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의 경의에 따라 중국의 개혁개방은 농촌의 거정생산책임제부터 시작되었다.30년이 지난 오늘 중국의 심층 개혁은 금방 페막된 중국공산당 제17기 3중 전회에서 통과된 농촌개혁발전에 대한 중대한 결정에 힘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조선족 농민들의 토지경영권은 지금 위험수준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사회에 대한 사회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서란시 각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10년 안으로 분산주거지역 조선족마을은 심양시 만융촌과 같은 대도시부근의 집중촌외에는 모두 소실될 것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우리 민족 농민들이 이번 토지경영권개혁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들은 대도시에 진출했거나 외국에 진출하여 번 돈보다 훨씬 큰 경제적인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조선족기업 역시 아직도 대부분 기업들이 요식업, 유흥업, 여행사 등 단순서비스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중국진출 한국기업과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자본,기술,상품,경영노하우,비즈니스 모델 등 많은 조선족기업들이 자체의 생존공간을 한국인이나 한국기업에 초첨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시각을 바꾸어보면 스스로 자체의 발전공간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조선족은 다른 민족 못지 않게 일찍 시장경제체제에 뛰어들었고 또한 이중, 삼중 언어의 우세도 있지만 중국 500대 기업서열에 든 조선족 기업도 없고 상장기업도 없다. 기타 소수민족은 있는데 우리는 없다. 그들은 언어의 우세도 없고 해외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 돈 버는데 전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로벌경쟁시대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우세와 다른 민족 집단이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역사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자각해야 한다. 조선족기업들은 한국계기업들과 차별화된 중국 특색의 기업발전공간을 개척하는 동시에 한국계기업들과 생존을 함께하는 전략적 제휴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자체적 발전공간과 미래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사실상 개혁개방이래 중국조선족은 전통적인 거주지역인 동북 3성을 떠나 중국의 연해지역 대도시로 대거 진출하게 된다. 현재 중국조선족의 거주판도는 동북 3성 대도시에 40여만 명,현시이하 농촌에 45만 명 그리고 산해관 이남 지역에 60만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리고 조선족의 해외진출도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법무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7년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 인구수가 35만을 넘어서고 있다. 그 외에도 일본에 8만 여명, 러시아에 5만 여명이 진출해 있으며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호주, 남미 등 지역에 진출한 조선족까지 합치면 50만 명을 넘어섰다.
흩어져버린 조선족사회가 하나의 민족사회로 생존하려고 한다면 조선족의 민족정체성과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해가야 한다.우리는 지속적으로 흩어진 조선족들이 공유할 수 있는 조선족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한 문화는 흩어진 조선족들이 계속 하나의 민족으로 될 수 있는 민족정체성 자체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 문화사업종사자들은 조선족사회가 오늘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키워드로 될 수 있다.
이제 각 지역 조선족 단체들은 현지 정부의 민족사업을 협조하는 위치에서 NGO의 합법적 지위 확보에 힘을 기울려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 효과적으로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출을 통한 민족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그리고 더 놓은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언어 교육과 민족문화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전통과 현대화,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민족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150년 이상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보했다. 이제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조선족사회가 살아남는 길은 세계화에 걸맞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출해가는 길밖에 없다.


청도조선족 집거지의 현황과 전망
청도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 회장 남용해

1978년 이전에 청도에는 다만 138명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구성원들은 주로 대학교 졸업 후 과학기술부문에 배치 받은 고급인재, 고위급 전업 군인, 항일간부와 그 가족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의 물결에 힘입어 동북에 거주하던 조선족들이 청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김치 장사, 작은 음식점을 차리고 또 서서히 기업에 발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지자 한국기업의 진출과 더불어 일부 조선족 기업가들이 청도에 이동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는 매우 우수한 기업인들이 사업에서 성공하여 청도에서 자기 위치를 튼튼히 지켜왔다. 현재 연해도시 청도시에는 조선족이 20만 명을 웃돌고 있으며 거기에 한국인들이 12만 명 상주하고 있다. 그리고 청도에는 우리 조선족 기업이 1천 여 개가 있고 한국기업이 약 6천 여 개가 있다. 청도조선족기업은 주로 서비스 업종이 우세를 차지한다. 그리고 규모가 비교적 큰 일부 기업들도 있는데 주로 외향성과 시장주도형의 범주에 속해있는 기업으로써 수출형 기업이 많고 경영자유화 정도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특징적이다.
지금 청도시는 중국 조선족의 새로운 큰 동네로 거듭나고 있다. 그중에서 청도시 호적을 소유한 조선족 인구가 약 1만호에 달하며 청도시에 아파트를 구입한 수는 대략 3만 5천호를 웃돌고 있다.그 구성원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노동자(한국기업)이고 그 다음으로는 개체영업자들과 회사원들, 다음으로는 학교 교육에 종사하는 교사와 정부관원 및 공무원들이며 그 다음으로 일부 무역회사 사장님들이다. 그리고 이런 구성원의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청도조선족 사회의 일원을 구성하고 있다. 집거지의 형성과 더불어 학교교육이 요청되었다. 청도에서는 현재 조선족 학교 2개를 설립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연해도시에서 유일한 조선족학교인 것이다.
청도의 조선족사회는 또 자기의 이익과 권리를 충분히 향수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협회를 설립하고 점차적으로 민족의 구심점을 이루어나가고 있다.1997년 3월에 처음으로 "청도조선족기업협회"를 내왔으며 이어서 "청도조선족여성협회","청도조선족노인협회"<"청조조선족골프협회","청도조선족축구협회","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청도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 등 무게 있는 단체를 내오고 여러 가지 유익한 사업과 행사들을 성황리에 이끌어냈다. 청도에서 "전국조선족운동대회(2005년)를 개최하였고 또 "청도조선족민속축제(2006년)"를 성공적으로 치루어냈다.
청도조선족은 또 한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거래하면서 한국인들과 연대성을 밀접히 이어가고 있다. 청도는 이미 우리 조선족과 한국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도 청도조선족사회의 불가분리의 구성원으로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청도조선족사회는 여러 가지 취약성도 갖고 있다. 우선 아직 핵심적인 자기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에 대한 의뢰성이 매우 강하다. 반대로 중국과 한족과의 연대가 빈약하다. 또 위기의식이 결핍하다. 세계적인 안목과 시야가 있어야 위기를 감수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청도조선족의 미래전망을 구상해본다.
첫째, 지역사회의 친목과 대화합을 이룩하여 공동체 삶의 터전을 닦아야 한다. 앞으로 청도지역에 조선족들이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조선족회관"을 마련하려고 구상하고 있다.
둘째, 조선족경제인들의 경제사업과 경영방식에 적합한 토대와 방향을 제시하고 세계와 겨룰 수 있는 무역 혹을 서비스와 문화특색을 갖춘 업종과 같은 산업의 구축에 힘써야 한다.
셋째, 조선족교육에 새로운 활기를 부여해야 한다. 민족교육은 민족의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중요한 고리이다. 청도에서도 우리 조선족학생들이 기타 소수민족학생들이 받는 혜택을 향수 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서 목표 교육과 직업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미래교육의 토대를 마련해가야 한다.
넷째, 청도조선족사회의 학술 및 문예, 체육 등 활동에 대한 활성화를 실현해야 한다.
다섯째, 청도조선족은 청도시정부의 지도하에 민족화합에 힘쓰고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문화, 문명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


연변의 발전에는 인재유치전략과 정책대안이 시급한 과제
일본 호쿠리쿠대락 교수, 조선족연구학회 회장 이강철

개혁개방이후부터 연변의 인재유출은 가급적으로 증가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시장경제에로의 전환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이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추세였다. 많은 조선족들이 해외나 국내 타 지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연변의 엄중한 인재결핍과 노동력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흑룡강신문사가 대형 취재팀을 조직하여 2005년 8월초부터 2006년 8월말까지 전 중국의 한겨레사회의 실태조사를 실시한데 의하면 현재 조선족가운데서 동북 3성 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인구는 약 58만 명이며 이는 정부의 인구통계 자료의 인구수 약 14만 8천명에 비하여 3배 이상이 된다. 즉 호적은 본지에 두고 이동한 인구가 약 38만 명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인구 통계와는 많은 차이가 나며 연변의 인구통계가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현재 조선족의 해외진출자는 50만 명을 넘어선다. 그중 한국에 약 36.5만 명, 일본에 약 5만 명, 러시아에 4-5만 명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미국에 약 4-5만 명, 그 외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세계 각지에 합법 혹은 비법으로 진출하고 있는데 현재 약 5만 명으로 추계된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조선족은 중국 국내에서 약 53만 명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해외에 약 55만 명이 이동하였는바 이동인구를 토탈하면 108만 명이 된다. 즉 중국조선족 총인구의 절반이상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대량적 인구이동을 단기간에 진행한 나라나 민족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족사회의 큰 문제는 인재부족이다. 조선족의 인재 특히는 고학력 인재들이 대도시나 연해지구 또는 해외에 진출하였기에 연변의 지방산업이나 기업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인재부족으로 하여 조선족지방의 행정 간부의 비율도 급격히 저하하고 있으며 민족자치지방에서 조선족자치를 실시하는데 많은 장애가 생길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조선족의 민족권리와  이익이 보장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1999년부터 2004년까지 연변각지의 인구변동과 인재수 변동에 관한 통계에 의하면 연변주의 인구는 5년간 0.4% 감소되었고 그중에서 조선족은 3.1% 감소되었다. 한족은 반면에 1.2% 증가되었다. 한편 인재의 변화를 보면 5년간 과학기술인원의 숫자는 18.3%나 감소되었다. 특히 조선족은 25%가 감소되었다. 연변의 인재유출과 감소한 비율이 실제적인 인구유출과 감소의 비율과 거의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발전도상에 있는 연변으로서는 일시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해외에 있는 조선족 중에서 적지 않는 사람들은 현지에 정착하여 성공적인 사업과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와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한 해외에서 선진적 기술과 경험을 배웠지만 안정된 직업을 구하지 못한 기술자나 지식인들에게도 연변은 고향으로서의 매력을 가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시기가 어느 때 오며 그 시기를 정확히 판단하여 지방정부가 그들이 돌아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허나 유감스러운 것은 연변의 당정지도자나 대학의 지도자들이 아직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에 인재의 유턴을 적극 추진하는 전략과 정책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만약 연변의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인재유치 전략과 정책을 제정하고 실시한다면 인재회귀의 시기는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전략과 방법으로 인재유치를 추진할 것인가?
우선 타 지역의 경험을 배울 수 있다. 복건성 하문시의 해외인재 유치의 경험과 정책을 보자. 해외인재가 사업부문에 취직하는 조건으로 (1) 채용기간 중에 매달 본인의 월급총액의 10배 이내의 특별 수당을 발급하며 특수 기능이 있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더 높은 월급도 지급할 수 있고 (2) 하문시 지정 지출에서 부담하는 사업부문에 근무하는 고급 인재에 대해서는 5년 이내에 매달 1,500원 이상의 생활수당을 지급하며 (3)전문기술직은 직위수의 제한을 받지 않고 상황에 따라 파격적 승급이 되도록 하며 (4) 출국 전과 귀국 후의 군속 년 수를 연속하여 계산할 수 있다는 등 적극적인 인재유치정책을 펼쳤다. 또한 해외인재가 설립한 기업에 대하여 (1)10만 위안 이상의 무상원조 (2)등록자본금총액의 49%에 상당하는 조합자본금을 대출 (3)우선적으로 창신 기금을 신청할 수 있고 (4)임대한 공장건물 200제곱미터 이내에 관해서는 1년째는 임대로가 면제되고 2년째와 3년째는 각각 시장가격의 50%와 80%로 임대료를 지불 (5)이익을 얻은 해부터 기업소득세는 처음 2년간 전액 면제되고 그 후 3년간 반액 면제 (6)기업설립에 관한 각종 수속비가 전액 면제된다. 그 외 해외인재의 자식의 취학과 주택구입 등 생활면의 우대를 향수한다. 이런 우대정책으로 하문시의 해외인재 채용이 2002년의 117명에 비해 03년에는 249명 즉 배가 늘어났다. 그중 박사학위나 고급 직을 가진 인재가 123명에 달했다.
연변도 인재유치 전략제정이 시급한 상황이고 인재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기 조성과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인재의 유출을 방지함과 동시에 연변의 발전에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는 중국의 대도시에 비해 일류의 대우를 해주면서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일류의 인재들이 연변에 많이 돌아온다면 중장기적으로 연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조선족경제 현황 및 기업인의 길
국가재경부 재정과학 연구소 공지봉

조선족경제가 이룩한 성과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연변에서 조사할 때 나는 연변 경제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국가가 연변에 대한 우혜 정책이나 연변정부에서 조선족경제발전을 위하여 진행한 중대하고 구체적인 전략적조치가 아니라 매년 거의 10억 달러씩 입금되는 외화 수입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10억 달러는 연변 제3산업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이끌었으며 연변으로 하여금 우리 나라에서 소비능력이 최고인 도시로 되게 하였다. 이 특점은 한 가지 문제를 반영하였는바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타고 조선족은 자신의 민족 특점을 이용하여 우리 나라 소수민족 중에서 발전이 제일 빠르고 제일 우수한 성과를 이룬 민족으로 되게 하였다. 그리고 전통문화로 인한 이동성이 강한 특점이 조선족으로 하여금 개혁개방 초기부터 큰 발전 우세를 차지하게 하였으며 우리 나라 소수민족가운데서 첫 번째 수혜자로 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문화는 또한 조선족경제가 진일보 발전하는데 제약적 조건으로 되기도 했다.어떠한 민족 문화도 모두 이중성을 띠고 있다. 그는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을 제약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조선족에게서 아주 뚜렷하다.
연변의 10억 달러 외화 수입은 어디에 사용하였는가? 답안은 소비, 소비 또 소비이다. 온주 사람은 중국의 유대인이라고 불릴 만큼 이동성이 강하고 경제 능력이 비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매년 외래수입은 1000억에서 3000억이다. 이 자금으로 온주 사람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그들은 부동산을 사고 자원을 사 온주의 부동산 사는 그룹을 형성하였다. 온주시정부는 금융부문을 통해 이 자본의 동태를 주시하였으며 나중에 금융업 발전을 고무 격려하는 정책을 제정하여 온주시로 하여금 금융체제 개혁의 첫 라인에 서도록 하였다.동일한 외래 수입이지만 두 지역의 인민과 정부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조치를 취하였다.
우리는 조선족을 먹기를 좋아하면서 부지런한 민족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뼈 빠지게 일하는 목적은 편안하게 살려는데 있다. 향수를 좋아하는 것은 조선족의 하나의 특점으로 되었다. 조선족기업도 마찬 가지이다.조선족기업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동시에 향수를 잊지 않는다. 때문에 조선족기업의 원가 구조 중 소비 비중이 중국 기타 민족의 기업보다 훨씬 높다. 동시에 이런 향수형 문화는 조선족기업의 이윤분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바 대량의 이윤이 소비 기금으로 분배되었고 기업인 본인 내지 가정의 각종 소비성 지출로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초보적으로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다.개혁개방 30년이래 조선족과 조선족기업은 모두 최대의 수혜자이다. 그들은 자체의 문화로 치부를 실현했으며 기업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바로 이 자체의 문화로 인해 인민들이 더 부유해지지 못하게 되었고 기업도 충분히 발전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이 조선족의 민족단결성은 이 민족으로 하여금 강대한 발전 우세를 소유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단결이 또 내부 페쇄를 형성하였는바 조선족은 다른 단체와 양호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렵다.
문제점은 조선족기업인이 어떻게 개혁개방 30년에서 경험과 교훈을 섭취하고 새로운 기회를 잡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은 WTO에 가입하였기에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 특수한 정책을 수여하지 못한다. 그리고 중국의 과학발전관의 중요한 사상하에 새로운 개혁개방을 진행하고 있으며 옛날의 발전모식을 다시 중복할 수 없다. 이런 배경하에 중국의 조선족과 한국인은 자신의 능력 제고를 하여야만 새로운 발전기회를 잡을 수 있고 중국의 새로운 발전중 기업이 더욱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우선 단결하는 민족 문화를 충분히 이용하여 조선족기업인과 개인의 응집력을 제고시켜야 할 것이다.
다음은 중국의 두 번째 개혁개방의 기회를 잘 이용하여 조선족기업의 발전 전략을 제고시켜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조선족 자체의 우세를 충분히 이용하여 조선민족의 연합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조선족 유학생 우수인재 양성을 위한 차세대 무역스쿨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원자 윤조셉

2008년 6월말 통계로 한국에 유학 온 학사과정 이상의 동포 유학생은 3,729명으로 학사가 2,366명, 석사가 918명, 박사가 445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 전공별 현황을 보면 공과가 816명, 이과가 727명으로 이공계가 41%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상경과정이 24%를 차지하고 있다. 동포 유학생의 국가별 현황을 보면 중국에서 온 조선족 유학생이 3,007명으로 80% 이상을 차지하는 절대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어 조선족 유학생의 교육과 활용이 동포 유학생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법무부와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는 한국에 체류 중인 조선족 유학생을 대상으로 2008년 7월 16일부터 19일까지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법무연수원에서 제1회 동포유학생 차세대 무역스쿨을 개최하였다. 이 교육은 한국에서 최초로 시행되는 것으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포사회의 우수 인재를 발굴, 양성하고, 이들을 세계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참가자는 무역이나 경영 관련 학과에 재학중인 동포 유학생 66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1명의 고려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족 유학생들로, 이는 최근의 한류 열풍 및 빠른 경제 성장을 보여 온 한국 기업의 중국진출 증가에 따른 조선족 유학생들의 고조된 관심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화에 의한 물리적 국경은 와해되고 세계 시장에서 민족개념의 네트워크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이런 흐름속에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나감으로써 무역 1조불 시대를 여는 "글로벌 한민족경제권"의 구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네트워크내의 구성원들이 다양한 생각과 의사를 서로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된 언어를 전달할 수 있는 의사전달의 통로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면 그 네트워크는 곧 관계의 단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의사전달의 경로가 존재할 때만이 공동의 언어가 그 효력을 발생 할 수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강화 및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용한 정보들이 보다 원활하게 다양한 정보전달의 경로를 통하여 보급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일단 유용한 정보가 획득되었다 하더라도 혜택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다른 네트워크로의 이전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실제적인 네트워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 거래 당사자 간의 이익이 호혜적이어야 하며 둘째, 당사자 간의 신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그리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아무리 잠재적 이익이 크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한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되고 따라서 네트워크는 활성화될 수 없다.
이런 점은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모든 경제활동이 해외부문과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연결되는 변화의 시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소수의 대기업 혹은 정부 중심의 국제 교역이 아닌 개인 혹은 개별 기업중심의 세계시장에의 편입은 이제 비공식적인 개별 네트워크의 역할을 강조하게 되었다.
네트워크 발전을 위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재외동포의 지역별 경제활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재외동포의 실정에 맞는 발전 방향 도출이 이루어져야 하며 수평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 및 실천 그리고 평가가 요구된다. 또한 다중 거점 활용을 통해 한국, 일본, 미국뿐 아니라 타 지역과 연결하여 광범위한 진출이 요청된다.
조선족 유학생 네트워크 활용은 "열린 공동에"로의 진입을 의미하는데 현대사회에서 이 열린 공동체의 핵심은 민족적, 문화적 소수파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획득하는 것이다. 정체성 및 고유성을 용인하면서 그것을 보편타당한 전체의 이익으로 바꿔낼 수 있는 길을 찾음으로써 재외동포 넽트워크에서 성공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개인 차원의 현지 사회로의 통합(또는 적응)은 대개 현지 문화를 잘 따를 수 있는 정도의 단계인 문화적 통합, 현지인들과 무리 없이 사귀어나가는 정도 단계인 사회적 통합, 그리고 "나는 재중동포이다"란 정서와 긍지를 가지는 심리적 통합의 3단계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재외동포 고유 문화에 뿌리를 둔 인력자원을 발굴하고 민족문화와 민족경제 발전에 유익한 글로벌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함으로써 세계에서 발판을 다져나가야 하고  국제적으로 재외동포 발전에 관심을 가진 전문 연구분야 학술 단체 혹은 민간조직의 형성을 유도하여 재외동포 민족 네트워크가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게 해야 한다.이를 통해 민족 비지니스 공동체를 구축하고 공동창조와 경쟁의 원리에 의거한 상생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조선족 동포 유학생 내트워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