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애심여성컵” 제6회 생활수기 장려상
(2020년 12기 연변 여성 발표)
0순위
김춘희

“딸, 잘 지내고 있지?”
엄마가 보내온 문자 한통. 엄마는 가끔 나에게 문자를 보내온다. 매주 일요일마다 영상통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평일 저녁에 이런 문자가 날아올 때가 있다.
“응~ 잘 지내고 있지.”
살가운 성격이 아닌 나는 자동응답 설정이라도 해놓은 듯한 딱딱한 답장을 보내곤 한다.
“응, 그려. 별일은 없고 그냥 심심해서. 피곤 할 텐데 얼른 씻고 자.”
특별히 전할 얘기가 없을 때도 안부 차원에서 한번씩 연락이 온다. 그때도 그런가보다 하고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영상통화를 하던 중, 엄마가 이런 말을 꺼냈다.
“요즘 들어서 네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감정이 북받쳐오르면 통곡을 할때도 있어. 나이 먹어서 그런지 요새는 노래 듣다가도 막 눈물이 나더라.”
갑작스런 엄마의 고백에 나는 순간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급히 머리속에서 위로의 단어를 고르던 중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 전 엄마가 문자를 보낸것은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미안함에 괜히 “보고 싶을 때는 문자 말고 영상통화를 걸었어야지~ ”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퇴근해서 피곤할 텐데 뭐하러” 라며 엄마는 지금은 이제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중노동을 하는 일도 아니고 퇴근 후 한가하게 시간 보내고 있었는데 그 말에 괜히 어딘가 찔리는 것만 같았다.
요즘 들어 우리 가족이 왜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가 속상함을 표출하였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돈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떠난지 올해로 벌써 14년차, 그 뒤로 한 가족이 한 지붕아래에서 생활한 시간은 통털어 반년도 채 안된다. 나는 위로를 한답시고 요즘 젊은 사람들 다 고향 떠나 부모랑 같이 살지 않고 우리랑 마찬가지라며 설명을 하였다. 단지 우리는 중국이랑 한국 두 나라에 살아서 더 멀게 느껴지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위로는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감을 처방했어야 하는 증상에 위로를 건냈으니 감기에 위장약을 먹은것이나 다름없다.
“나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코로나19가 얼른 지나서 우리 가족 빨리 다시 만났으면 좋게어. ” 라는 말은 통화가 끝난 한참 후에야 가슴 한켠을 맴돌았다.
청도에서 인천까지 배행기로 한시간 거리, 보고 싶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갑작스럽게 터져버린 코로나 19때문에 출입국이 통제되였다. 보이지 않은 벽이 우리 가족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물론 자가격리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하지만 건강에 유의해야 할 시기에 혼자 한국에 남아있을 아버지 걱정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19때문에 편하게 밖을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엄마는 거의 하루종일 집에서 감옥살이 한다.
그동안 쌓인 극심한 노동량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엄마는 작년 하반기에 예정보다 일찍 정년퇴직을 하였다. 각종 근육통, 관절염 때문에 힘들어하던 차에 이제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자 하여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몇개월간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더니 다행히 차츰씩 회복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에 버금가는 아픔이 살살 엄마 가슴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젊은 시절부터 생계유지를 위해 일만 해오던 엄마에게는 휴식보다 바쁘게 채운 일상이 더욱 익숙했다. 취미생활 하나 없이 달려오던 엄마에게 주어진 온전한 24시간은 힐링보다 공허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집안일을 끝내고 남은 시간에 티비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시간은 잘 흘러가는데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마음 한 구석이 텅 빈듯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설상가상 코로나19때문에 가끔 주말에나 한번씩 아버지랑 근처 산에 산책하러 가는 것 외에는 채바퀴 돌리는 듯한 하루를 견디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언뜻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혹시 우울증이라도 걸리지는 않을가.
누가 그랬던가, 불안한 예감은 한번도 틀린적이 없다고. 지난주 일요일 영상통화에서 엄마는 재차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감정을 토로하였다. 나에게 표현한 감정은 아마 십분의 일도 안될 것이다. 정확히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극도의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우울한 감정들은 그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초기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치료해야 한다고 타이르자 엄마는 담담하게 괜찮다고 하였다. 나이 들어 갱년기에 접어들면 다들 이런 시기를 격는다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듯 하였다.
엄마의 애써 무덤덤하게 지은 표정과 약간 떨리는 목소리에 내 가슴은 먹먹해졌다. 예쁘고 밝은 한 여자의 인생 제2막이 왜 이렇게 아픈 시작으로 열리는가. 자기자신을 잃어버린채 온전히 가족에게 올인한 여자에게는 이런 결과만 주어지는 것인가. 허무하고 불공평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차오른다. 반평생을 치열하게 가족의 행복을 지켜온 만큼 이제는 몇배로 그 행복을 누리는 게 마땅하다. 이제 내가 엄마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작년 가을, 청도 집에 휴가왔을 때 부드러운 오후 햇살아래 내가 사준 책을 읽으며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렇게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아. ”
그렇다. 엄마는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때 엄마의 혼자말로 공중에 떠돌던 한마디가 내 귀가에 맴돈다. 그 짧은 구절에 담겼던 복합적인 감정은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내 가슴에 문을 두드린다. 여유롭게 비추는 햇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엄마는 그때 과연 어떤 심정이였을까.
엄마는 작은 마을의 집안 형편이 그닥 좋지 않는 가정에서 4남1녀중 넷째로 태여났다. 그 시절 여느 여자 아이처럼 엄마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양보하며 살았다. 좋아하던 공부는 경제적인 원인으로 어쩔수 없이 중퇴를 하게 되였고 그대신 삼촌들을 먹여살리고 학교에 보내는데에 보탬이 되기 위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외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가정이다보니 매일 어마어마하게 쌓이는 집안일을 소화하느라 젊은 소녀시절 엄마의 허리는 펴질새가 없었다.
가끔 엄마가 이런 과거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때면 나는 최대한 엄마의 눈을 피하려 애썼다. 눈물이 고인 주름진 눈가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만약 학교를 계속 다녀서 대학교를 졸업했더라면 엄마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과 직장 어디에서든 완벽하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엄마에게는 훌륭한 리더가 겸비해야 하는 능력과 성격이 갖추어져있기때문이다. 힘든 과거속을 거닐는 엄마를 볼때마다 나는 혼자 이런 가상에 빠진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엄마 노릇하던 소녀는 결혼을 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였고 진짜 엄마가 되였다. 그후 30여년간 자식, 아내, 엄마, 며느리, 그리고 직원이라는 무거운 수식어들을 등에 업고 앞만 보고 쉴새없이 달려온 엄마. 그 사이 세월의 풍파는 엄마의 얼굴에 주름을 새겼고 구석구석 쌓아둔 피로는 이제 와서 복수라도 하듯 넘쳐흘러 결국 몸은 파업선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반강제적으로 주어진 여유로운 휴가와 어렵게 다시 집어든 책, 그걸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눈물에는 소녀시절 독서에 대한 그리움, 최선을 다해 달려온 자신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다시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이 꾹꾹 눌러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제 정년퇴직후 집에서 건강관리하고 휴식하는 기간동안 좋아하는 독서를 마음껏 즐길 법도 한데 정작 엄마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런 좋아하는 독서를 취미생활로 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생활형편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탓에 한권에 만원을 훌쩍 넘는 책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일손도 놓았으니 부담이 두배로 커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온전히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에는 야박한 엄마다. 결국은 또 아내와 엄마로써 곁에서 남편을 챙기고 자나깨나 자식을 걱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외로운 밤을 뒤척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에게 있어서 나는 항상 일순위다. 가슴속에는 항상 나로 가득차 있고 모든 노력과 결정은 나를 위한 것임을 어렸을때 부터 알고 있었다. 이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에 무탈하게 졸업과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지금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초년생일때는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성장하기에 바빠서 나 자신 말고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매년 신년계획에는 온통 영어공부, 기획공부, 운동…등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부모님과 연관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삶과 일의 벨런스를 찾아 여유가 생길 무렵이 되니 어느덧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많이 컸고 그동안 부모님은 더 많이 늙었다. 게다가 엄마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까지 하였다.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엄마의 사랑 백분의 일만큼도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급히 조치가 필요하다.
엄마에게 있어서는 제2의 봄날이 될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 그 시간들을 엄마가 좋아하는 독서, 어두운 밤 한 줄기 빛이 되어줄 독서로 채워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올해의 계획표를 꺼내 펼쳤다. 빼곡하게 적은 <To Do List>에 0순위로 큼지막하게 한줄 더 추가한다.
<0. 매달 책 2권씩 엄마에게 선물 할 것. 엄마에게 자주 연락할 것.>
그리고 <Wish List>에도 0순위에 크게 적는다.
<0. 엄마가 다시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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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희 프로필
1990년 4월, 김림성 교하시 출생.
2013년 산동공상학원 일본어학과 본과 졸업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
현재 산동성 청도시 하이얼 냉장고 해외기획부 재직 중
처녀작 <사람의 온도(수필)>를 <송화강>잡지2020년 6기에 발표하면서 등단.
2021 제1회 "민들레"문학상 우수상 수상. 수필 <0순위> 2020 "애심여성컵" 제6회 생활수기 장려상 수상. 동시 <불꽃놀이(외9수)>로 2020 제2회 '중국조선족청년문학상' 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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