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투자와 직원봉사로 불황 타개
제조업제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조선족기업인이 운영하는 청도한성자수유한회사가 적극적인 장비투자와 인성화한 직원봉사로 기업의 활로를 개척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청도한성자수는 황철호 사장이 1998년도에 설립한 컴퓨터 자수와 자수디자인을 개발, 기획,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컴퓨터자수회사이다.
고향이 요녕성 안산시인 황철호 사장은 29세의 나이가 되던 1994년도에 요녕성 안산강철공장의 공직을 버리고 청도시로 진출하였다. 지인의 소개로 입사한곳이 청양구 하장진에 위치한 한국업체인 청도고려체육유한회사이다. 총경리 비서로 반년을 근무한후 회사에서 마침 고려자수 공장을 별도로 세웠기에 4년간 자수공장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원래부터 우세인 관리능력 이외에 자수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어릴때부터 한족학교에 다녔기에 한국어가 서툴었기만 이젠 제법 막힘없이 구사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신심이 생기자 홀로서기에 도전하였다.
1998년 그는 이촌에 있는 청도복장11공장의 기계를 6대 빌려 맨주먹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당시의 꿈은 하나 내 소유의 공장을 멋지게 꾸려 자수업종에서 으뜸이 되보자. 그의 이런 꿈은 뛰어난 능력과 끊없는 노력하에 2005년도에 현실화 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청도 청양구 청은고속도로 하장 입구에서 3키로 떨어진 단산공업단지내에 3000평방미터의 공장부지를 얻어 확장이전하였다. 원래 빌렸던 기계는 돌려주고 새 기계 8대를 구매하여 더욱 높은 목표로 향해 발전하였다. 골프가장, 복장, 완구 회사들의 자수가공업무를 끊임없이 받아들여 튼튼한 경제적기초를 닦아나갔다.
그러다 2008년도에 세계금융위기가 닦쳐왔다. 일감이 떨어지고 매출액이 하강선을 긋기 시작하였다. 전에는 모르고 지냈던 생산직원 구하기 어려움이 연이어 들이닥쳤다. 자연히 직원들의 봉급기준이 상승되었다.
그는 한동안의 고심끝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최첨단 장비추가투자를 경정한것이다. 기존에 가동되고 있는 자수기계들이 점점 늘어나는 고객들의 수요를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2008년부터 그는 장비투자에 500여만원을 투자하였다. 동 업종에서 최고 수준으로 불리는 한대에 근 50만원에 달하는 일본 타지마 자수기를 지금까지 16대나 확보하였다. 이 기계는 봉제 해드가 20두나 되기에 기존의 12두인 국산기계에 비하면 훨씬 선직적인 것이다. 싸이즈 규격이 작은 일감만 받던데로부터 규격이 크고 가격이 비싼 일감들을 척척 해내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현재 한성자수는 상기 타지마 일본 자수기계 16개 이외에 한국 썬스타 자수기계 2대 합계 18대 최선진 자수기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청도시 조선족봉제업계는 물론 한국 자수업체들과도 능히 나란히 어깨를 겨룰만한 능력을 부여해주었다. 회사는 불황속에서도 몇백원의 매출액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생산직원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안해낸 것이 기숙소 제공과 직원 가정방문이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100명의 직원들을 위하여 3층짜리 기숙사 를 지어 먹고 자는 것을 공장에서 일체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다. 또 장금제도, 장려제도를 실시하여 능력있고 일잘하는 직원들에 경제적 장려를 진행하고 있다.
가장 특색적인것이 황철호 사장이 구정기간에 직접 직원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2008년부터 황사장은 한번도 제집에서 편안히 구정을 지내지 못했다. 정월 초하루부터 5-6일동안 직원들이 살고 있는 산동 서북부 산간지역인 임기, 하택 지역을 차를 몰고 찾아간다. 그것도 명절 선물을 사들고 한집한집 찾아간다고 한다. 보통 한번 가면 5일내에 8개현을 다닌다고 한다. 직원들의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직원을 칭찬하고 새해부터 더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마지막으로 직원에게 대한 요구로 다른 친구들이 있으면 설쇠고 함께 데리고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보통 구정을 한번 쇠고 나면 직원의 30%가 유실된다. 일하기 싫거나 다른 회사로 이적하거나 이런 저런 핑계가 많은 것이다. 황사장의 이런 인성적인 노력은 직원들의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공성을 불러일으켜 지끔까지 한성자수에 근무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초창기때부터 근무해온 임직원들이다.
전체적인 자수업체들의 침체위기에 대처하여 황철호 사장은 제2창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세계 전자키판(電路板) 생산량의 60%가 중국서 생산되고 있다. 전자키판은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공업설비, 가전전기 생산에 필수적인 것으로 광활한 시장이 있다. 이 사장을 공략하고저 황철호 사장은 한국사장과 합작으로 전자키판에 들어가는 유기용접보호제(OSP) 자체 생산 연구를 거듭 진행하여 왔다. 일전에 그는 제품생산에 성공하여 월 200키로그람씩 생산해내고 있다. 본 제품은 질이 떨어지는 중국제품과 비해 훨씬 유량한 성능을 갖고 있는데 판매가격이 같은 질량의 일본제품 가격의 60-70%밖에 안되어 장밋빛 전망이 예산되고 있다.
과감한 장비투자와 직원들에 대한 인성교육으로 청도자수업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황철호사장의 밝은 내일을 전망해본다.
(박영만 기자)
사진설명: 회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칭다오 한성자수의 황철호 사장.
날짜 : 2011년 12월 07일
칭다오 한성자수유한회사 황철호 사장
수를 놓으며 제2창업의 꿈 이룬다
프로필
황철호(黄哲浩.47)
요녕성 안산고등학교 졸업
칭다오 한성자수유한회사 사장
칭다오 금성투자관리유한회사 사장
칭다오 오크투자천태성분회사 사장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부회장
칭다오에서 자수하면 황철호 사장을 로따(老大-맏이)로 손꼽았다. 칭다오 지역에서는 조선족으로서 제일 처음으로 먼저 자수를 시작했으며, 현재 20곳 조선족자수업체 가운데서 1위이다. 1995년 이전에는 칭다오지역에 중국 자수회사가 없었다. 한국 자수회사들이 밀려들면서 1996년부터 중국기업들이 자수업에 투자하기 시작, 자수회사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결국 한국기업이 칭다오지역의 자수산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 사장은 칭다오에 진출하면서 한국자수회사에 근무했는데 그 인연으로 자수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최근에는 자수업이 사양길에 들어서자 투자관리유한회사를 설립하여 제2금융권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화공제품 생산 준비를 다그치고 있다. 제2창업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수를 놓는 일에 몰입
수를 놓은 일이라면 자연 여성들이 하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황 사장은 이 경계를 타파하고 자수업에 뛰어들었다.
요녕성 안산시 출신인 황사장은 1994년 29세의 젊은 나이에 다니던 안산강철공장에 사표를 내고 칭다오로 진출했다. 황 사장은 지인의 소개로 한국독자기업인 고려회사에 입사했다. 총경리 조리로 반년 근무했는데 마침 회사에서 고려자수 공장을 별도로 세웠다. 황 사장은 3년동안 자수공장 관리를 담당했다. 여기서 관리방법과 자수기술을 터득하여 1998년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황 사장은 이촌에 있는 부도난 복장공장의 낡은 기계 6대를 임대하여 소자본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당시 황 사장의 꿈은 "동업종 가운데서 가장 크고 잘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황사장은 임대한 기계로 자수 일감을 받아 돈을 버는 족족 설비를 구입하는데 투자했는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설비 4대를 구입했다.
돈을 벌자 2005년 독자적으로 자수회사를 설립했다. 황 사장이 자수회사를 설립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다니던 고려회사의 바이어들이 찾아와 오더를 주며 부탁했다. 그때 황 사장은 "남의 담벽 밑을 파서는 안된다"며 오더를 받지 않고 거절했다. 후에 고려회사에서 하지 않을 때 오더를 접수했다. 그래서 황 사장은 고려회사 사장과 좋은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황 사장은 수를 놓는 일에 몰입하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가라앉고 마음은 평정을 되찾는다”고 말한다.
"열흘 붉은 꽃 없다"
손으로 한올씩 수를 놓던 전통자수에도 자동화 바람이 불어왔다. 컴퓨터자수기를 도입하여 자동화에 의한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는 업체가 크게 늘었다.
전자자수기는 부착된 컴퓨터에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을 미리 입력, 이 소프트웨어에 따라 자동적으로 수가 놓아지는 첨단제품이다. 말하자면 메이커에서 원하는 모습양을 디자인, 이 모양을 테이프에 펀칭, 컴퓨터에 입력시켜주면 컴퓨터가 이 디자인에 따라 수를 놓음으로써 제품의 자동생산이 이뤄질 수 있다.
컴퓨터에 의한 자동생산이 이뤄짐으로써 인건비절감은 물론 종전 재봉틀을 사용해서 수를 놓을 때보다 약 20배가량 생산성이 향상됐다.
따라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업주들이 선물을 사들고 와서 오더를 주며 '애걸'하다시피 했는데 후에는 경쟁이 심해졌고 이윤도 대폭 줄어들었다. 게다가 2007년부터는 인건비가 대폭 상승했다.
황 사장은 이런 추세를 감안하고 700만위안을 투자하여 16대의 외국산 컴퓨터자수기를 구입하여 노동자를 120명으로부터에서 90명으로 1/4 감원했다.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에 이어 글로벌 위기로 오더가 줄어드는 악재까지 덮쳐 고전하다 부도나는 자수회사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일부 칭다오지역의 한국 자수회사들은 동남아로 이전하고 있으며 바이어들도 동남아로 거래처를 옮기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자수업도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다. 반드시 업종을 전환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제2창업의 전성기 맞아
2011년 10월, 황 사장은 등록자본 1000만위안, 유동자본 1000만위안으로 투자관리회사를 설립하여 제2금융권으로 진출했다. 중소기업들이 대출난에 몸살 앓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대출부업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이자는 자유화를 실현했는데 신용과 실적이 좋은 중소기업에 한해서는 낮은 이자로 대출을 준다.
현재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해에 600-700만위안의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 조선족기업이 70%, 한족기업이 30%를 차지한다.
한편 황 사장은 한국기업과 손잡고 전자키판( 电路板)에 사용되는 유기용접보호제(OSP) 양산 준비를 다그치고 있다. 전자키판은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공업설비, 가전전기 생산에 필요한 제품이며, 중국에서 세계 생산량의 60%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실험을 끝낸 상태이며, 실험제품으로 4톤 생산해 놓았다. 월 200킬로그램씩 생산할 수 있다. 판매 루트를 개척 중인데 내년 하반년기부터 본격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설에 노동자들 집을 방문하다
황 사장은 인성화 관리에도 남달리 신경을 썼다. 보통 구정을 쇠고나면 집에 갔던 노동자들의 이탈률이 약 30%에 달한다.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숙련공을 안정시키는 것을 절대 홀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 사장은 설에 노동자들 집을 방문하는 '따뜻한 사랑 전달하기' 운동을 벌렸다.
황 사장은 2008년 정월 초하루부터 한주일간 선물을 사들고 노동자들의 집을 찾아갔다. 하루에 한개 지역의 10여 집을 돌았다.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새해에 더 열심히 뛰여어줄 것을 당부했다. 그때부터 황 사장은 한번도 제집에서 편안히 설을 쇠보지 못했다.
또한 회사내에 3층 건물 기숙사를 지어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으며, 관리자의 경우 방을 제공해주고 식비도 월 500위안씩 보조해준다.
한편 장려제도를 실시하여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황 사장의 따뜻한 사랑은 직원들의 마음을 감싸주어 회사를 이탈하는 직원이 극히 적었다. 현재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초창기때부터 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이수봉 박영만기자 lixiufeng@hljxinwen.cn
사진설명: 지난 9월 말, 회사를 방문 취재했을 때 황철호 사장이 자수 생산현장을 돌아보고 있다./본사기자
날짜 : 2012-11-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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