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공명을 불러일으킬 때 빛을 발산한다
한국인병원의 선행을 추척해본다
날짜 : 2011년 12월 15일 (14시 03분)
한국인병원에서 또한번 민족사회에 사랑을 환원하는 선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고질병으로 앓아온 중국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시인인 김기덕 선생에게 무료 치료를 진행키로 결정한 것이다. 길림성 교하시 출신인 김시인은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문학에 정진, 현재까지 1천 여 수의 시를 발표, 국내는 물론 한국, 일본, 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문화인들은 민족의 희망입니다. 문화가 사그러지면 민족도 소실되고 마는게 아닙니까?”
김봉동 원장은 별로 크게 떠들 일이 아니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한국인병원의 이런 결단이 얼마나 큰 사회적 공명을 불러일으키는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일단 칭다오연해조선족문인협회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07년에 설립된 칭다오연해조선족문인협회는 현재 카페 회원가지 200여 명을 소유한 문학전문인단체로 중국내 거의 모든 한글문학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김시인은 이 협회의 창시인의 한사람이며 뒷심과 고문 역할도 놀고 있다. 이홍철 회장은 “저희 협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국인병원에서 대신 해주어 정말 감사하다.”면서 “한국인병원으로 하여 오래동안 가슴속에 걸렸던 응어리가 내려간다.”며 한숨을 톺았다. 조선족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인병원이 오래동안 추구해온 민족사회에 대한 환원 선행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문화’라는 의미가 가미되면서 공명의 폭이 더 커진 거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긴 한국인병원에서 지금까지 해온 사례를 봐도 짐작이 되는 선행인 것은 물론이다.
일찍 한국인병원을 설립한 동기도 한겨레가 현지 사회에서 흔히 부딪치는 언어와 인간관계의 난제 해결을 위해서였다. 남달리 민족심이 강했던 김봉동 원장은 당시까지만 해도 칭다오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선미미” 한식당 사업을 접고 병원 설립에 나섰던 것이다. 교통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외래인으로서 당하는 억울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김봉동 원장은 항상 민족을 선두에 내세웠다. 해마다 정해진 코스처럼 진행되는 조선족민속축제와 노인운동회 또는 여성협회 활동에 한국인병원의 의무의료진이 언제나 빠짐없이 대기하고 있었다. 병원의 분망한 일정으로 항상 일손이 딸리면서도 민족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처놓고 나서서 감동을 주었다.
김봉동 원장이 수년간 청양구 모 한국인교회에서 무료 진료를 해온 일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런 묵묵한 모습이 김원장의 참다운 모습이다. 무슨 일이나 내색내지 않고 조용히 흘러보내는 것이 김원장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금년 한해 한국인병원에서 민족사회에 해온 봉사만 해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10월 말, 김원장은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 부산의 모 사찰에 가서 무료 왕진을 진행했다. 이는 2007년이래 해마다 1~2 차례 꼭 진행하는 행사의 일환이다. 이번 걸음에 김원장은 뛰어난 침구술로 매일 100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찰해주었다. 11월에는 재칭다오 한민족 여성들을 상대로 부산과 무료건강검진을 실시, 5일간 도합 300여 명 여성들이 그 혜택을 받았으며 병원에서 무상으로 지출한 비용만 10여 만 위안에 달했다.
이런 굵직한 선행을 내놓고 사소한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중 작업 도중에 눈을 상하고 유명 병원들을 전전하다가 나중에 빈손으로 한국인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실명의 변두리에서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사자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의무 홍보원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한국인병원의 이런 봉사 활동은 민족사회의 한결같은 긍정을 받고 있다. 칭다오조선족여성협회에 이어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에서도 병원을 방문, 앞으로 민족단체간의 합작과 교류를 추진하고 서로 돕고 밀어주는 호혜호조의 파트너 관계를 건립하기 위한 토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Comment Canc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