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친선의 상징- 위동항운 취항 28주년 새로운 도약

위동항운 신조선 ‘뉴골든브릿지 7’ 호 취항식 거행

 

 

 

중국과 한국 간 최초의 민간 합작회사이자 여객선사로 출발한 위동항운회사가 설립 28주년이 되는 9월 16일, 당사의 신조선 ‘뉴골든브릿지 7(新金桥7)’호 취항식이 힘찬 배고동소리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16일 오전 11시 18부 웨이하이부두에는 거대한 ‘뉴골든브릿지 7’호 를 배경으로 중한 양국 및 세계 각국 깃발이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웨이하이시정부와 산둥성, 칭다오시 및 한국의 관련 해운사 1000여 명이 첨석한 가운데 취항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위동항운유한회사 전기정 사장(한국)은 ‘뉴골든브릿지 7호’는 여객 724명, 화물 335TEU 적재가 가능하고 최대속력 25노트로 운항하는 고속 카페리선이라고 소개하면서 7000만 달러를 투자한 신조선 건조 프로젝트를 지지해준 한중 주주사의 전폭적인 지지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지금으로부터 꼭 28년전인 1990년 9월 15일 산둥성 웨이하이와 한국 인천항을 오가는 위동항운 ‘골든브릿지(金桥)’ 호가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중한수교 전인지라 황금가교가 되어 두나라 관계를 크게 발전시켜 달라는 양국 국민의 간절한 희망이 담긴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다 

 냉전시기 50년 간 단절되었던 중한 양국은 바로 위동항운이 만든 이 황금가교를 통하여 교류를 재개하였다. 중한 수교 이전의 유일한 교류 통로였던 ‘골든브릿지’호를 통하여 양국 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당시 동북3성의 조선족동포들은 위동항운이 통하기 전 한국으로 가려면 멀리 홍콩을 에돌아 가야 했으나 ‘골든브릿지’호가 개통되면서 웨이하이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바로 갈 수 있었다. 따라서 위동항운은 조선족들과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인연과 기억을 갖고 있다. 

1992년 8월 24일 역사적인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이듬해인 1993년도부터는 칭다오~ 인천 항로를 추가 개통하면서 중한 카페리 업계의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위동항운은 그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통해 중한 합작기업(중국과 한국 50대 50 비율)의 모범사례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위동항운의 취항으로 인해 웨이하이시와 인천시 또한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교류 등 빈번한 왕래를 통해 호혜평등의 관계를 형성하고 현재 이웃 형제와 같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중국선주협회 장서우궈(张守国) 상무부회장은 축사에서 중한 간 단절되고 얼어붙었던40년 얼음덩이를 깨고 출발한 위동항운이 중한 양국 간의 인적, 경제무역 교류와 발전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위동항운유한회사가 중국선주협회 중한카페리전문위원회 회장단위로서 이번 취항식을 계기로 중한 해운시장의 새로운 발전에 더욱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고 격려했다. 

이어 귀빈들이 간이식 음성발사기를 함께 눌러 배고동소리를 힘차게 울렸다. 귀빈들 손을 거쳐 터져나오는 힘찬 배고동소리는 합성음으로 중한 간의 새로운 발전도약의 출발신호로 드넓은 웨이하이항 창공으로 널리 울려퍼졌다. 

연후 내외귀빈들이 ‘뉴골든브릿지 7’호 선상에 올라 참관시간을 가졌다. 

바다에서 움직이는 5성급호텔을 방불케 하는 7호선은 더욱 고급화된 선내시설과 안락한 승선감으로 일반여행객, 가족단위 및 모든 단체 여행객에게 더욱 쾌적한 선박여행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아울러 훨씬 더 빨라진 선속(운행속도)과 업그레이드된 안전 운항시스템에서 시장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카페리업계의 선두주자 위동항운의 경영이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조선업계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최신형, 최고급 카페리선인 ‘뉴골든브릿지 7’호의 취항을 통해 웨이하이 및 산둥성과 한국 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더욱 촉진되어 현재까지 해온 중한 황금교량의 역할이 더욱 충실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 박영만 기자 

 

사진설명: “뉴골든브릿지 7”호 카페리선 취항식에서 귀빈들이 단상에서 공동으로 배고동소리를 힘차게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