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자오  한민족동포들 스포츠로 하나로 뭉쳤다.
르자오 조선족운동회 성공적으로 개최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5월을 맞아 르자오시에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들이 모처럼 한곳에 모였다. 르자오시제4회조선족운동회가 뜻깊게 개최된 것이다.
  태양이 비추는 곳이라 하여 명명된 아름다운 해변도시 르자오시는 칭다오시에서 남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져있다. 남으로 장쑤성 랜윈강시와 잇닿아 있는데 수려한 해변풍경과 안성맞춤한 날씨로 인해 예로부터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운동회가 개최되는 르자오시 은천로소학교 운동장에는 통일 운동복을 입고 나온 조선족들로 하루종일 법석이었다. 평소 각자 생계로 바쁜 일정을 보내느라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웃음꽃을 피운다.
오전 9시, 장엄한 국가연주에 맞추어 운동회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이날 운동회에는 300여 명 조선족과 한국인이 참가했다.
행사는 르자오조선족동향회 송남병 부회장이 사회했다. 르자오시조선족동향회 조남호 회장, 진경덕 감사, 전임봉 초대회장, 르자오시한인회 전한규 회장, 고승옥 전임회장 등이 단상에 앉았다.
  조남호 회장은 개막사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르자오시조선족운동회가 올해로 4회째를 맞게 되었다면서 타향을 떠나서 열심히 살아가는 조선족동포들이 스포츠라는 매개로 똘똘 뭉치고 친목을 다져가자고 호소했다.
 르자오한인회 전한규 회장은 축사에서 르자오에 진출한 조선족동포와 한국인들의 몸속에는 같은 피가 흐른다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 듯이 같은 르자오 땅에서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도우면서 슬픈 일은 서로 나누고 기쁜 일은 함께 해서 나아가자고 덕담했다.
이어 일행은 4개 팀으로 나뉘어 축구, 배구, 육상경기, 바줄당기기 등 경기를 진행했다.
  A팀은 수출입무역협회 회원 위주, B팀은 자영업,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C팀은 현대파워택 변속기공장에 근무하는 조선족 위주, D팀은 현대위아 엔진공장에 근무하는 조선족 위주로 구성되었다.
르자오에 진출한 조선족들은 지역성분을 가리지 않고 일률로 르자오시조선족동향회라고 하는 한울타리에 뭉쳐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서 특유의 단합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체육대회를 승부를 가리는 경쟁의 자리보다는 그동안 한 도시에 살아가면서 서로 잊고 지냈던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훈훈한 자리였다.
  르자오의 조선족들의 역사는 한국업체들의 진출과 흐름을 함께 하고 있다. 25년 전 한국의 기보전자(에어컨 부품 생산)가 르자오시에 첫 기업으로 진출하였다. 연후 2003년 현대위아자동차부품회사(자동차 엔진생산), 그뒤 현대파워택(변속기 생산) , 현대다이모스(대형 변속기) 등 한국 현대자동차 계렬사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 르자오의 한국기업 수는 40여 개에 달하는데 대부분 현대, 기아 자동차 부품관련 업체들이다. 한국업체들이 르자오에 진출하면서 조선족 통역과 업무일군들이 하나둘씩 르자오 땅을 밟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르자오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인수가 3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한국업체에 근무하고 일부가 물류, 식품, 음식점 등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르자오 한인회는 25년 전에 진출한 전도학 회장이 1기부터 3기까지 연임하였으며 현재 전한규 회장이 제9대 회장으로 그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
 르자오시조선족동향회의 탄생은 고승옥 제8대 한인회장의 공로와 갈라놓을 수 없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고승옥 사장은 르자오에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사랑으로 남다르다. 그는 항상 우리는 한민족 한핏줄 한울타리라고 강조하면서 서로가 돕고 포옹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꾸준히 말과 행동으로 강조해왔다. 그의 영향과 지원으로 르자오시조선족동향회가 순리롭게 탄생하였으며 전림봉 사장을 초대 회장으로 제1회 조선족운동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운동회가 진행되자 더욱 많은 조선족들이 소문을 듣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현재 르자오시조선족동향회 임원진에만 50여 명 조선족이 가입되어 있다. 
  전림봉 초대회장(39세)은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운동회 전날 한국에서 돌아와 행사를 함께 하고 운동회 이튿날에 한국으로 출장가는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젊은 조남호 회장(33세)은 일찍 르자오기술학원을 졸업하고 현대위아회사에서 8년 간 근무하다가 현재 독자적으로 물류회사를 운영, 칭다오, 톈진, 베이징, 상하이 등 전국 각지에서 오는 자동차 부품을 저장했다가 현대차 계렬회사들에 공급하는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외 르자오시와 한국의 평택시를 일주일에 3차례 오가는 카페리를 이용하여 한중 간의 물류사업도 진행하고 있었다.
 르자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한 곳 있다. 바로 취푸사범대학 르자오캠퍼스 한국어학과이다.
오상사범대학을 졸업한 헤이룽장성 영안시 발해 출신의 김동국(55세) 교수가 2005년에 설립한 한국어학과는 현재 4개 학년에 (한 학급 2개 반) 240명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이외 2012년도부터 석사연구생 모집자격이 내려져 현재 20여 명 대학원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마침 김동국 교수가 이날 함께 교편을 잡고 있는 부인 로정애 부교수와 함께 운동장을 찾았다. 김동국 교수는 현재까지 600여 명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밝혔다.
점심때가 되자 급식회사에서 운송해온 260개 도시락이 운동장에 도착했다. 일행은 텐트아래 푹신한 방수포를 깔고 앉아 맛나는 도시락에 걸쭉한 막걸리로 목을 추겼다.
이번 행사에 조선족노인들이 60여 명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고향이 상지인 유련수(64세) 노인은 89년에 르자오에서 조선족으로 처음으로 자그마한 식당을 꾸렸다. 그후 한국으로 석재를 수출하였는데 이젠 널직한 아파트도 구입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헤이룽장성 이춘시가 고향인 조강원(76세) 노인은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르자오시 철강공장에 분배받아 아들 따라 왔다고 한다. 치치할시가 고향인 정운택(67세) 노인도 큰아들이 르자오 한국무역회사에서 통역으로 근무하면서 이주해왔다고 한다.  이들은 르자오시가 해변도시로서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며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후부터 육상운동이 이어졌다. 조선족노인분들을 위하여 준비한 물병이고 달리기, 볼링 그리고 어린이들을 배려한 여러가지 달리기 항목도 진행되었다.
운동회는 단체 줄넘기, 바줄당기기 경기를 마감으로 오후 5시가 훨씬 넘어서야 끝이났다.
이어 진행된 페막식에서 성적발표 및 상장과 물품발급이 있었다.
이번 행사에 조남호, 전림봉, 고승옥, 송남병, 김현수, 이광렬, 고득석, 백일철 등 37개 업체 사장들이 6만 위안에 달하는 현금과 수만 위안 가치의 물품을 협찬하였다.
3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어루어낸 르자오시조선족운동회, 웃어른을 존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르자오시조선족사회의 밝은 앞날을 기대해본다.
/ 박영만 기자
사진: 르자오시조선족운동회에 개막식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