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
—칭다오 조선족의 빈과 부 '두 얼굴'
칭다오 조선족사회는 이주 20년 역사를 통해 정착, 안정, 자립의 기반을 닦았고, 2000명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사립 학교도 세워 생산, 생활, 자녀교육 기반을 닦았다. 다수 조선족들은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소득이 보장됨으로써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한편 칭다오의 조선족기업수는 1천여개에 달하며,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이 1억달러가 넘는 기업이 한 개, 천만달러 넘는 기업이 20여 개, 500만달러 넘는 기업이 50여 개 된다. 이러한 숫자들은 칭다오 조선족사회의 '양지'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칭다오조선족사회에는 성공한 사람도 많지만 사업실패, 병환 등 원인으로 어렵게 근근득식하며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다.
칭다오시 청양구소수민족연합회 한해월 사무국장에 따르면 칭다오의 조선족 빈곤가정 비율이 10%가 된다고 한다. 올해 청양구 민정국에서 소수민족 빈곤가정을 돕겠다며 후보자를 확정하라고 했는데 각 가두판사처에서 올려보낸 빈곤가정 후보자 10명 가운데서 조선족이 4명이나 되었다. 한해월 사무국장은 "빈부 격차가 크다"며 "노인협회도 생활이 보장된 사람들이 나간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못나간다"고 덧붙였다.
없는 사람은 "물 밑에서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물 밑에서 사는' 빈곤가정을 보면 가정의 병환 혹은 사업실패가 원인이다.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들이다.
한 조선족 부부는 한국에 갔다가 큰 병이 들어 귀가했는데 얼마가지 못해 빈털털이가 됐다. 한달에 생활비 300위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정은 5명이 이촌의 작은 집에 거주하는데 여자가 청소 알바를 다니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40대 여성은 "남자들은 나이들면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여성들도 기술이 없으면 취직이 어렵다"며 고정일자리가 없어 돈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소득은 얼마되지 않아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교남의 한 조선족기업인은 조선족 노인이 교남거리에서 고물을 줍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 노인은 고물을 주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흑룡강성 탕원현 출신인 김양(중1 )은 올해 엄마, 아빠가 병으로 모두 사망하자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칭다오에 있는 큰아버지 집으로 이주했다. 현재 청양 부근의 셋집에서 살고 있으며 한족학교에 다닌다. 얼마후 할아버지까지 별세했고 할머니는 반신불수가 됐다. 게다가 큰아버지는 결석이 심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정의 소득은 큰어머니가 한국회사에 파출부로 다니며 한달에 버는 돈 2000위안이 전부이다.
시브쩐( 惜福镇 )에 거주하는 한 조선족은 사업실패로 차고를 임대해서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시골집의 한해 임대비가 7000위안, 차고의 한해 임대비는 8000위안, 그나마 시골에 가지 않고 시내에 거주해야 일감을 구하기가 쉽다고 한다. 차고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뜨락에 나와 매일 울며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고 이웃들이 안타까움을 전했다.
회사에 출근하다 회사가 부도나면 아파트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헐값에 급매하는 화이트 칼라도 있다.
한편 서원장 아파트단지에는 조선족이 약 5000가구 거주하는데 술 마시고 싸우며, 경비까지 때리는 불미스러운 일도 가끔 발생하고 있다. 또한 매일 큰 돈 버는 허황한 꿈만 꾸며 빈둥빈둥 노는 '백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난은 죄가 없지만 가난은 극치가 있다. '양지'의 자긍심에 도취되어 '음지'의 존재와 배려를 망각하지 말기를 기대한다.
/이수봉 박영만기자
lixiufeng@hljxinwen.cn
Comment Canc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