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0명의 심장으로 뭉쳐진 극동보석
2009년 2월 6일, 주칭다오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칭다오청운한국학교 건축기금 약정서 체결 및 감사패 전달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행사에서 (주) 극동보석 김동극 회장이 칭다오청운한국학교 최영남 이사장과 300만 위안 기부금 약정서를 체결하였다.
청운한국학교는 2008년 6월 이명박 한국 대통령 내외의 중국 방문 중 산둥성내 한국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중국에 요구, 인가를 받았으며 또 한국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재외국민 교육지원 등에 관한 법률상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된 공립학교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 극동보석은 1차 기부금으로 청운학교에 100만 위안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극동은 보석 가공 및 쥬얼리 관련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디자인 교육기관인 GIA KOREA를 설립해 1,500여명의 디자이너를 양성하여 소중한 노하우를 후대에 전하고 있으며 한편 장학 사업을 포함한 불우이웃을 돕는 복지사업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극동보석(대표 김동극)이 교육 지원에 특별히 전념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극동보석은 인조 다이아몬드에서 세계 굴지의 회사이다. 원석 제조기술에서는 세계 톱을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한 원석을 칭다오에서 가공해 미국과 유럽 등지로 공급, 월 10만 개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세계 1위 큐빅 제품 생산업체 극동보석은 원석소재에서부터 제품생산 및 판매에 이르는 라인을 전부 갖추고 있다.
1979년 7월, 김동극 회장은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규빅의 사업성을 듣게 되었다. 마침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김 회장은 경영자다운 결단력과 실천력을 과시, 즉시 자그마한 공간을 빌려 가공기계를 들여놓고 직원 몇명과 함께 당시에 3D업종으로 분류되던 보석가공 연마사업에 뛰어들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어렵사리 발걸음을 떼면서 김 회장은 배움의 중요성을 한층 느꼈다. 그렇게 배우며 사업을 확장하다가 한국내 시장이 포화하면서 두둑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문을 두드리기까지 김 회장은 피타는 노력을 경주했다. 탄탄한 성장세를 타고 사업규모를 키워가던 1992년 경, 김 회장은 경쟁업체들과의 끝 없는 신경전, 보석가공 인력 확보의 어려움, 사업 환경 악화 등 성장을 가로막는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결단에 직면하게 되었다. 김 회장은 결연히 중국으로의 이전을 결정, 1993년 4월 칭다오극동보석유한공사를 설립했다.
극동보석의 성장비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김 회장의 보석디자인에 대한 투자이다. 군소 보석제작업체들이 제품 생산에만 급급해 디자인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던 상황에서 김 회장은 한국 보석 산업계를 이끌어갈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해 1989년 미국 보석 감정·디자인 교육기관인 GIA 한국 분교를 유치했다. GIA 분교의 한국 유치는 한국 보석 산업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극동보석으로서도 대외 신임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리더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성장의 구심점을 제공한 것이다. 한마디로 30여 년 동안 지속적인 신기술 및 신규 디자인 개발과 글로벌마케팅을 통해 지금의 극동보석이 비로서 있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 중국, 미국 3개 나라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있는 (주)극동보석은 그 성공 비결을 다국적 운영체제 구축에 두고 있다. 초창기 사업기반이 됐던 한국에 기획ㆍ디자인본부를 두고 인건비가 싼 칭다오공장에 생산공장을 설립, 또 주력 수출 무대인 미국에는 마케팅본부와 판매법인을 설립하는 등 (주)극동보석의 무대는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2006년 3월 극동보석은 칭다오시 유팅공업단지에 1만6000제곱미터 규모의 초현대화 설비를 갖춘 신 공장을 완공하고 이전식을 가졌으며 그해 8월 한국 경기도 평택에 원석 소재공장을 설립, 2009년 말에 이르러 매출액이 2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김동극 회장은 기업의 사회 환원을 자주 강조한다. 그는 “노인들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청양구에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양로원을 신축하는 구상을 하고 있으며 한편 청소년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극동보석은 현지 사회에 많은 기부를 해왔지만 어느 하나 회장 개인의 이름으로 된 것이 없고 모두 1040명 전체 사원의 공동 명의로 기부되어있다. 2008년 사천지진 구호성금으로 5만 4천 위안,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유팅가도 양로원에 6만 위안 어치의 물품을 지원, 2009년 청운학교 100만 위안, 2010년 옥수지진 구호성금으로 2만 1천 위안, 2010년 장애인연합회에 1만 위안 등 도합 114만 5천 위안의 기부금을 회사 직원 공동 명의로 사회에 헌납한 것이다.
김동극 회장의 글로벌 리더십과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인드는 널리 세상에 알려지면서 칭다오와 한국 경상업계에서 높은 위망을 쌓아가고 있다.
김동극 회장은 일찍2008년에 한국 귀금속산업의 발전과 보석도시 익산의 위상을 국내외로 알린 공로로 ‘자랑스런 보석인 1호’ 공로패를 수여받았으며 한국보석협회 제1임 회장, 국제유색보석협회 이사장, 중국 보석협회 이사 등 중요한 직무를 역임했다. 한편 재칭다오 한인사회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2009년 12월에 칭다오 한인회 초대 회장으로 당선, 올해 다시 연임하고 있다.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한국기업(15)
장학규 김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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