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장구 안정적 경영그래프 그린다
2000년부터 근 10년 간 무역회사를 경영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음식점, 호텔 등 경영에도 뛰어들어 몸으로 부딪치며 달고 쓴 맛을 경험한 위해시 목포수산유한회사 윤용섭 사장은 자신의 경영노하우를 총화해 내실을 다지며 장구한 안목으로 안정적인 경영을 시도하고 있다.
흑룡강성 화남현 태생인 윤용섭(47세)씨가 개혁개방의 봇물을 타고 기지개를 켜는 희망의 도시 위해땅에 진출한 것은 1993년, 인재유치로 고향의 교육사업을 접고 위해시 대외무역국 소속 포장회사에 근무했다. 몇년간 교원사업을 하면서 굳어진 책임감으로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며 업무에 전념했고 나름대로 무역을 접촉하며 비결을 터득하게 되었다.
2000년 포장회사가 문을 닫자 50만 위안으로 위해시 영화(?和)수산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농수산물무역에 본격 뛰어든 윤 사장은 회사에 출근하면서 성실과 신용으로 쌓은 친분에 힘입어 길림, 산동 등 곳으로부터 고사리, 도라지, 목이버섯 등을 한국으로 수출해 가관의 수입을 올렸다.
불측풍운이라고 초창기의 희열이 채 식기도 전에 한국파트너에게 보낸 송이버섯이 가격대가 틀린다는 이유로 몇만 위안 만을 건지고 80여만 위안을 손실보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고사리 가격이 엄청 올라 3개월간에 한화 5천만원을 벌어 손실을 얼마간 미봉할 수 있었다.
2001년 윤 사장은 한국친구의 이름을 빌어 서울에서 20개월 간 식당을 경영해 100여만 위안을 벌었다. 이 기간에도 윤 사장은 무역업을 계속 이끌어 왔다.
2003년 위해에 돌아온 윤 사장은 한 친구의 불투명한 권고에 귀가 솔깃해 파악없이 2000평방미터 되는 한 호텔을 임대맡아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영업을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을 휩싼 사스 직격탄에 맞아 또 한번 쓴 고배를 경험했다. 시초부터 휘청하던 호텔 경영은 치열한 경쟁에서 허둥지둥 5년을 가까스로 버텨오다가 끝내는 180여만 위안이라는 적자를 내고 자리를 내주는 수 밖에 없었다.
두차례의 큰 좌절앞에서 거듭되는 고민끝에 파도식 그래프를 그리며 달고 쓴 경험을 심각히 총화한 윤 사장은 지난해부터 다시 대한국무역을 주종으로 잡고 홍어를 주품목으로 한국 내 최대 홍어 취급회사인 목포수산회사에 홍어를 수출하고 있다. 가격, 품질, 결제 등 면에서 어김없이 신용을 지켰고 홍어시세가 좋아 경제위기임에도 별로 영향받지 않고 현재까지 무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고사리, 도라지, 냉동 고추, 조경용 자재(석재)등에로 경영품목을 확장하며 안정적인 경영을 실시하고 있다.
윤 사장은 무역업은 짧은 기간내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는 가격시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8년 한국에 빚받이를 갔던 윤 사장은 아침시장을 돌아보던 중 도라지 가격이 엄청 높은 것을 감안, IMF로 도라지수입이 엉망임이 분명했다. 귀국 즉시로 도라지를 대량 수출해 가관의 수입을 올린 윤 사장은 “익숙하면 잘 보이지 않지만 서먹한 곳일수록 더 잘 보일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해야 지속적으로 잘 나갈 수 있다. 잠시적인 얼림수로 바이어를 기편하는 한탕주의는 금물이다” 다년간의 수출무역에서 쌓은 노하우를 이같이 일축하는 윤 사장은 홍어수출에서 바이어가 이간쟁이의 꾀임에 들어 그와의 합작을 포기했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찾아와 다시 합작을 요청해 왔다며 성실과 신용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 이미 60여만 달러의 무역액을 올린 윤 사장은 100만 달러 목표 달성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신심있게 말했다.
/남석 기자 nanshi20004@hotmail.com
0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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