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철씨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애호 내지 본업을 버리고 창업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이다.
1972년 길림성 화룡현에서 출생한 이홍철씨가 모 신문사의 초빙에 응해 청도에 오기는 2000년 9월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해 고향에서 벌써 많은 시를 발표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홍철씨는 한껏 부푼 심정으로 편집업무에 임했으나 현실은 너무 참담했다. 신문사의 경제난으로 800위안밖에 안되는 봉급도 제대로 내주지 못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워진 이홍철씨는 2001년 6월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광고전문인 "천하"잡지사에 입사하여 업무원으로 뛰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달에 구두 2~3컬레씩 밑창으로 내면서 뛰어 다닌 결과 서서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고, 업무원 생활 5개월 후 부터는 편집까지 겸해하면서 그나마 걱정없이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혼신을 쏟던 잡지사 역시 2년만에 한국인에게 인수가 되었고, 다시 2년이 지나서 혹심한 경제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아내와 돌도 안된 아들애까지 딸린 이홍철씨는 남에게 얹혀사는 길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심심히 느꼈다. 하여 선택한 것이 인쇄디자인 업이었다. 2004년 5월, 우주를 정복한다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정복할 征에 우주 宇를 따서 정우디자인이라고 이름 달고 맨땅에 헤딩으로 생면의 기업체나 요식업체의 문들을 노크하며 다녔으며, 광고업무원 시절 맺었던 인맥들이 많은 도움이 되어 사업이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창업 5년이 된 지금까지 근 600여 개 업체에 납품하였으며, 초기 청도지역 위주에서 현재는 연변, 흑룡강, 상해, 사천, 대련, 광주 등 전국 각지는 물론 국경을 넘어 미국 에레이까지 납품하고 있다.
작은 인연 하나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알면 그것이 어느날엔가는 큰 갚음으로 돌아 온다는 이홍철씨는 어쩔 수 없이 "전업"을 바꾸게 되었지만 시종 문학의 꿈은 접지 않았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다시 필을 들었으며 2008년에는 연변작가협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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