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며 영위하는 인생 즐거워요
청양 골든벨 노래방 변순복 사장
단돈 2만 위안으로 창업하여 18년간 칭다오에서 노래방을 운영해온 변순복 사장이 봉사와 섬김, 사랑으로 즐거운 인생을 영위해가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어교사로부터 음식점 사장으로
변순복씨(44세)의 고향은 흑룡강성 탕원현 탕왕향 오성촌이다. 아버지 형제 9명, 어머니 형제 7명인 대가정에서 형제 4명 중 셋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 초등학교4,5,6학년의 한어 교사로 교편을 잡고 초롱초롱한 눈길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꿈많은 시절을 보냈다. 책임감이 강한 그의 노력하에 학생들은 당시 흑룡강성 동부지역 한어경색대회에서 1등상의 영예를 따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시 불어친 한국바람, 연해지역 진출바람은 오성촌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처녀교사의 마음을 유혹하였다. 째지게 가난했던 가정을 위하여 돈벌이에 나서기로 했다. 당시 그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잘 살아보려고 연해도시로 떠나는 그를 누구도 나무람하지는 않았다.
광저우를 거쳐 선양에 자리잡은 변순복씨는 가정교사로 근무하던 중 지금의 남편인 김광선씨를 만나 사랑을 언약하게 되었다. 그때 김광선씨는 금방 한국에서 귀국했었다.
칭다오에 한국기업들이 대거 진출하여 무엇을 해도 좋다는 소문을 들은 이들은 단돈 2만 위안을 들고 무작정 칭다오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가 2000년이였다.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이촌, 서산(西山)아파트단지에서 매일식당을 꾸렸다. 당시 유명한 선양불고기를 주메뉴로 했는데 선양에서 1.5위안 하는 불고기 일인분을 이촌에서는 6~7위안에 팔 수 있었다. 냉면도 2. 5위안인데 이곳에서는 5~10위안에 팔았다. 남편이 채소를 사고 음식을 만드는 모든 주방일을 도맡고 변순복씨는 서빙을 책임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고 바쁘게 돌아쳤지만 밤에에 부부가 이불 속에서 당일 번 돈을 세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돈 벌로 나왔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지
변순복씨의 욕심은 언녕 노래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칭다오노래방 경영 최장수 주인공
당시 한국인들이 거의 매일이다싶이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고는 찾는 것이 노래방이었다. 기업의 파견 근무로 홀몸으로 나오는 상황이다보니 적적한 시간을 달래는데는 노래방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 우리도 노래방을 꾸려보자.
이렇게 되어 이촌 칭펑루(青峰路)에 ‘도레미노래방’이 탄생되었다. 말이 노래방이지 기계 한대에 상이 달랑 3개가 전부였다. 돈이 벌려지는 속도가 눈에 보였다. 2년 후 이촌시장 남쪽으로 이전하여 ‘골든벨도레미노래방’을 운영하다가 도시개발로 철거되면서 2010년부터 현재의 청양 태양성(太阳城) 부근의 ‘골든벨노래방’으로 확장이전하게 되었다. 당시 주후이호텔(祝辉酒店) 2층에 있는 ‘쌍쌍노래방’을 인수하여 100만 위안을 투자하여 9개의 방을 갖춘 최신 노래방으로 거듭난 것이다.
20여년 칭다오 진출 조선족 역사상 노래방을 18년 이상 견지해온 가게는 골든벨노래방이 유일하다.
노래방을 운영하면서 변순복씨는 다이어트건강체인점인 시미유(西米优-瘦身) 체인점에도 투자하여 성과를 올리고 있다. 3년 전 다른 한 조선족여자친구와 80만 위안을 투자하여 지난시 리청구(济南历城区)의 총대리를 맡았는데 2년만에 본전을 회수하고 현재 이윤수익단계에 들어섰다. 1년 넘게 매일 저녁늦게까지 노래방을 영업하다가 새벽에 칭다오에서 지난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체인점운영을 열심히 배웠는데 직영점 한개에 10여 개의 가맹점을 성공적으로 늘렸다.
그러던 그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베풀며 살아가는 인생 즐거워요
매일이다싶이 채바귀처럼 돌아가던 변순복씨는 어느날 목안이 꽉 막히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의 거듭되는 충고에 병원을 찾은 결과 감상선암이란 충격적인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하얀 병실안이었다.
다행히 갑상선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암 중에서도 갑상선암은 ‘착한 암’으로 불리우고 있다. 의사는 그녀에게 다시는 자신의 몸을 무리하게 혹사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 변순복씨는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40세가 될 때까지 오로지 돈을 위해서 살아온 자신이 미워나기도 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다. 그제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래 다시는 뒤로 미루지 말아야지.
실제 변순복 사장은 그전에도 봉사활동에 적지 않게 참여했었다. 매년 몇번씩 재칭다오 탕원조선족노인협회 분들을 모시고 식사도 대접하고 용돈도 넣어드렸었다. 이외 청양 ‘한마음밴드팀’에 가입하여 양노원, 고아원 등 노약자분들을 위한 무료공연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가했었다.
현재 변순복 사장은 사회봉사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자아개발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칭다오 창농CEO최고경영자과정 제7기를 졸업했으며, 2016~2018년도에 가정심리교육상담사교육과정을 떼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 심리상담사지도자자격과정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외 렴미연 원장이 운영하는 베스트음악학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피아노, 가야금 연주 및 성악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어릴 때 가난으로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것인데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니 음악선율이 귀에 속속 들어온다.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16세나는 딸애 김은주양도 노래와 춤을 배우고 있는데 지난해 전국업여대회에서 일등상을 타오기도 하였다.
변순복씨는 공익봉사를 추구하는 칭다오조선족여성협회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여 주칭다오 한국총영사관 통역지원 봉사자로 여성협회 차세대위원장으로도 수년간 봉사하여 왔다.
지난 3월 가목사 출신의 한계월씨 암치료 모금활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약하는 변순복 사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랑아 어찌 늙으랴”, “초혼”, “추억으로 가는 당신”, “북극의 봄”, “첨밀밀”…
변순복 사장이 평소에 자주 부르는 노래들이다. 갑상선 수술로 비록 목소리가 석쉼해졌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그는 오늘도 이렇게 인생의 골든벨을 열심히 울리고 있다.
/ 박영만 기자
사진설명: 인생의 골든벨노래를 열창하고 있는 변순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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