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조원정밀제조유한회사 최련옥 이사장 

'가냘픈 어깨'로 일류 민족학교 건설을 떠메다    

 

 

    

 

새로운 거주지에서 민족학교를 성공시키기란 참 여의치 않은 일이다. 너무도 많은 새 출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당한 자금이 뒷바침이 되어야 함은 물론, 정부차원의 지지와 인정을 받아야 하고, 민족사회 구성원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공립학교보다 더욱 특색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하고 현실에 부합되는 학교 운영체제와 우수한 교직원 대오를 구성하느라 백배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달려야만 성공을 가늠 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래서 현재 형성된 연해지역 우리민족 집거 지역에서 민족학교 건설에 투신해 온 사람이 손꼽아 셀 수 있을 정도로 드물고 성공적인 사례 또한 적다.
2000년 8월에 설립돼 10년의 여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청도벽산조선족학교가 그중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이 학교를 성공사례로 이끈 청도조원정밀제조유한회사 최련옥(39세) 이사장을 적어 본다. 
묵묵히 민족교육에 뒷심이 된 여자
개혁개방과 중한수교의 동풍이 중국 조선족사회에 남긴 가장 큰 영향은 연해지역으로의 대규모 인구유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산동성 청도시에도 많은 수의 조선족이 몰려와 집거지를 형성했다. 따라서 민족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청도조선족사회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2000년 8월 이창구에 조선족소학교가 고고성을 울렸다. 이 학교가 바로 오늘날 벽산조선족학교의 전신이다.
오랜동안 단일 민족지역이였던 원인으로 이곳 청도는 소수민족 정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조선족학교를 설립하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였다. 다행히 현귀춘, 김명남 등 민족사회 지성인들이 민족학교 설립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많은 도움을 줬다.
당시 30살의 나이의 최련옥, 한창 강소성 곤산(昆山)에서 조원정밀제조유한회사를 운영하며 기업인으로의 날개를 펼치고 있을 무렵 그에게는 우연히 이 학교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12명의 학생에 9명의 교사진! 최련옥 이사장은 참 힘든 민족학교의 시작으로 여기면서  2006년까지 줄곧 묵묵히 뒤에서 자금적 지원을 해왔다.
중국 일류 민족학교 건설에 팔 걷고 나서다
다년간 학교 운영을 뒤에서 지켜보던 최련옥 이사장은 늘 한 가지 고민에 모대기고 있었다. 기왕의 수준대로 계속 힘겹게 학교를 지탱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올인해 훌륭한 학교를 세워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베이징, 천진 등 지역의 조선족학교들이 육속 폐교의 아픔을 겪은 경력을 거울로 삼아 일류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고는 민족학교를 성공에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2006년 여름, 새 학기를 맞으면서 최련옥 이사장은 직접 학교 운영에 참여할 결심을 다졌다. 학교 운영을 직접 맡으면서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교학수준 제고이다. 탄탄한 교사진이 구성되지 않아 다년간 우리 아이들의 학업에 영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그해 여름 최 이사장은 조선족의 교육 중심인 길림성 용정시를 찾았다. 용정시 시청과 교육국을 발이 달토록 찾아다니면서 정부측의 도움을 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민족교육에 대한 열정에 감동한 용정시 관계자들께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년간의 교장 담임 경력과 능력을 겸비한 김철준 교장을 벽산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답복을 받았다. 김 교장에 이어 용정시에서는 실험소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허옥선 교장과 북안소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손인숙 교장을 추천해 주었는데 이분들은 모두가 수차 전국 및 길림성 우수교원 영예를 지닌 우리민족의 우수한 교육전문가들이다.
이어서 최련옥 이사장은 현지 민족사회와 한국과도 연대관계를 강화하기에 힘썼다. 청도에 있는 각 단체장들과 하나가 되기에 최선을 다했고, 청도 한민족사회 각종 행사에 정성껏 학생공연을 준비해 협조하군 했다. 특히 2007년 청도조선족민속축제에는 150여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대형 무용팀을 선보여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  한국의 교육기관 등과 빈번한 교류를 가지면서 민족학교를 성공에로 이끌어 내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이같은 노력이 드디어 기꺼운 성과를 안아왔다.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교원들이 찾아와 벽산에서 교편을 잡게 됐고 학생들의 성적이 눈에 뜨이게 제고돼 영어 종합실력이 이창구 31개 소학교 중 6위, 수학성적이 10위, 한어성적이 상위권에 도달했다.
또한 한국에서의 성원과 더불어 현지 조선족기업협회에서도 장학금 지원, 물품 전달 등 형식으로 학교 발전에 동참했다.
2008년, 최련옥 이사장이 직접 학교 운영을 맡은지 2년이 되는 해는 벽산조선족학교의 일대 발전적 전환기라 할 수 있다. 4월에 전국 조선족교장대회가 벽산학교에서 열렸다. 지금까지 동북3성 공립학교에서만 열렸던 교육전문가들의 연구포럼이 청도 벽산학교에서 개최된 것이다. 40여명의 전국 조선족학교 교장들이 벽산에 모여 민족교육의 미래에 대해 검토했다. 아울러 그해 9월에는 성공적으로 3개 반급 80여명의 학생을 유치해 초생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09년에 들어서면서 최 이사장은 본격적인 학교 신축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청도에 조선족이 가장 많이 집결된 청양구에 자체의 학교를 세워놓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일 좋은 교학환경,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제일 편한 교수환경, 민족사회에는 부담없이 모여서 민족의 화합을 다지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대의 기쁨으로 간직되고 있다.
자신과 도전하는 힘찬 인생
길림성 용정시에서 동년을 보내며 민족교육의 꿈을 간직했던 최련옥 이사장, 언제나 두 팔로 멋있는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 그녀에게는 일을 제쳐놓으면 별다른 흥취가 없다. 조용한 성품의 그녀가 사업 앞에서는 추호의 양보와 주저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민족 여성의 기질을 그대로 유전 받은게 아닐까 여겨지며, 어찌보면 도전을 위해 태여난 인생인가 싶다.
학창시절에도 그러했고 중국수출입회사 길림분회사에서 사업할 때도 그러했으며 자체로 조원정밀제조유한회사를 경영할 때도 그러했다. 오직 담당 분야에서 최고만을 고집하는 성미 때문에 그녀는 여유시간을 즐길 겨를이 극히 적다. 오직 사업의 성공만이 최대의 즐거움이 된다.
최련옥 이사장과의 담화에서 감명깊은 말 한마디를 들었다. 매일 아침이면 그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말 가진게 없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가진게 없는 인생에 일 하나만은 멋있게 해야만 부끄럽지 않겠다고 다짐한단다. 그래서 최련옥 이사장은 모든 일에 올인하는 기질을 키우게 됐다고 했다.
가냘픈 어깨로 짊어진 중국 일류 민족학교 건설의 꿈 키우고 있는 최련옥 이사장, 그 꿈을 실천하는 과정에는 날로 많은 어깨들이 합류해 함께 우리민족 교육의 미래를 지탱해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석 기자


날짜 : 2009년 06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