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흥전법률사무소 김옥 변호사 

한국기업의 청산, 합병 해결사  
 

 

 


세계금융위기로 중국진출 외국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생산정지 및 합병처분 하려는 한국기업들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계속 제조업을 견지해보아야 적자가 날게 뻔하고 그래서 더 견지하자니 갈수록 수미산이라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기업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산동흥전법률사무소의 김옥변호사(42세,사진 )가 그 해결사로 나섰다.
그는 금년 상반기에만 이미 6건의 기업합병(M&A) 한국기업을 접수했는데 그중 완성된것이 4개 기업에 달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타 2개 기업도 현재 진행형이다. 기업규모가 자그만치 1000만달러 투자한 기업들만 꼽았다.
중국 사법계의 명문대학인-중국정법대학을 1992년도에 졸업한 김옥변호사는 1997년 칭다오로 진출하여 본격적인 한국기업관련 법률업무를 다루어왔다. 그는 선후로 한국전북대 법학과와 미국 인디안나주 법률사무소에서 각각 3년과 1년 법률연수를 다녀온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조선족 국제변호사이다. 처음에는 영어를 한국어보다 더 유창하게 구사하였는데 한국유학을 다녀온 이후로 한국어가 더 능숙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일본어를 배우느라 한창이다. 김변호사는 현재까지 중국대표 자격으로 매년마다 세계한인변호사협회(IKLA)에서 미국 하와이, 유럽, 일본, 한국 등지를 돌면서 진행하는 년회 포럼에 참가하고 있다.
 투자, 합병 등 국제적인 업무를 맡아 성과를 내자 김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3년전 하얼빈시에 본사를 둔 뻔마(奔马)그룹에서 김 변호사를 찾아왔다. 현재 중국인들의 투자붐이 일고 있는 제주도에 4억달러를 투자하고저 고문변호사를 찾던 중이였다.
현재 제주도에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는 중국인이 한국에 사상 가장 많이 투자한 건으로 그룹의 장선운 회장은 한국정부에서 중국인 1호로 한국시민증을 발급받았다. 그 뒤면에는 김 변호사가 한달에 두번씩 청도-제주도를 오가면서 쏟은 심혈이 깃들어 있다. 김변호사는 칭다오진출 초창기부터 칭다오한국영사관, 한국무역관,  칭다오한인회,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고문변호사를 맡았는데 2년전 칭다오에 일본영사관이 들어서면서 일본영사관의 유일한 고문변호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동시에는 그는 칭다오시정부 청사가 들어서있는 칭다오시 남구 고문변호사로 활약한다.  2기 연속 칭다오시 남구의 정협위원으로 당선되었으며 , 청도시 우수변호사 칭호를 수여 받았다.
 한편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위기에 빠진 한국업체들에 대한 지원의 손길로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 모 철강제조 한국독자기업은 1억위안에 달하는 투자를 하였는데 복잡한 철수절차때문에 김변호사의 사무실을 노크했다. 그는  중국정법대학 동창생들의 인맥관계, 청도시정부 각 부처간의 관계를 동원하여 부채 탕감, 채권 회수 등 기업청산의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해주었다. 현재 회사는 정상적인 기업청산 절차에 들어갔고 한국투자기업도 자신의 권익을 수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청도에 투자한 한국가전제품, 광학회사 등 기업들의 어려움도 시원하게 해결해주어 합병청산 업계의 1인자로 정평이 나 있다.
김변호사는 2년전부터 칭다오조선족여성협회의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여성협회는 200여명의 회원으로 불우이웃 돕기, 환경보호, 효도관광, 자녀교육 등 건전한 주제로 칭다오조선족 단체중에서 3위안에 꼽히는 우수한 민족단체이다. 칭다오조선족여성협회는 오는 10월에 중국 각지의 조선족 여성단체들의 최고의 모임인 ‘애심여성포럼’을 조직하게 된다. 중국의 우수한 조선족 여성 엘리트들이 모이는 본 행사에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그 중심에 김변호사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중국, 한국, 일본 3국의 현안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자유무역협정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법률이다. 김변호사는 일본, 한국을  오가면서 중, 한, 일 3개국 자유무역협정 변호사 모임을 조직하고 있다. 남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아이디어로 자유무역협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 변호사들간의 뉴대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김옥 변호사는 앞으로도 우리 민족을 위한 뜻깊은 일들을 열심히 해나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 김명숙기자 
 

날짜 : 2012-08-02

 

 

 

 

'우수 변호사'로 되기까지-산동흥전변호사사무소 김옥 주임        
 
 "다시 한번 인생을 그려볼 기회가 있으면 더욱 부지런한 삶을 택하고 싶다."....." 올해 2월 산동흥전변호사사무소 주임으로 발탁된 김옥 변호사의 말이다.
37세인 그녀, 중국인들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변호사업종에서 그녀는 끈질긴 의지력과 부지런한 사업자태로 경쟁자들의 존중과 인정을 받았다. 9년간 '한 우물'파기에 집착해온 김옥 변호사한테는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없으리라 믿는다.
1997년, 고향 하얼빈의 변호사업무를 그만두고 새로운 비전을 찾아 청도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찾은 첫 사업터, 흥전변호사사무에서 그녀는 장장 9년이란 시간을 보내왔다. "중도에 새로운 직장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업무수준이 제고를 가져오면서 유혹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끝내는 이곳에서 몸을 안착시켰다고 말하는 김옥 변호사는 잠시간의 이익에 너무 눈을 밝히면 결코 금전의 노예로 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녀는 행동으로 이 말을 증명했다. 1999년 10월, 업무기반이 점차 탄탄해지고 있을 시점에 김옥 변호사는 돈벌이보다 업무능력 제고에 신경을 기울였다. 한국 국제종합법률컨설팅에서 중국 협력변호사로 근무하면서 김 변호사는 한국법에 대해 감이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의 법적 업무를 제대로 해결해줄 수 있었다. 이어 2001년부터는 1년간 주청도미국베이컬. 단니얼스법률사무소에서 중국법률고문으로 있었다.
 "가정과 사업가운데 어느 쪽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됩니까?" 이 물음에 대한 김옥 변호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가정에 불화를 낳는다면 난 단호하게 사업을 포기할겁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가족사진을 지켜본다.
요즘은 변호사사무소 주임직을 담임하면서 야근하는 시간이 무척 많아졌다. 매일이다 싶이 빨라서 저녁 8시 반이 되어야 퇴근한단다. 그러면서도 퇴근해서는 아들애에게 시를 외우게 하고 함께 놀아주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 가정과 사업을 함께 잘 조직할 수 있는 것으로 김 변호사는 자부심을 가진다.
어려움을 전승하는데서 성취감을 느낀다는 김옥 변호사는 "자신의 재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여직껏 닦아온 청도시장도 포기할 만한 자신이 있다"고 내비쳤다. 하얼빈에서 청도로 나올 때도 그녀는 똑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개척정신이 있었기에 김 변호사의 인생은 항상 다채롭다.
1992년 중국정법대학 국제경제법 법학사 학위를 획득한 후로 김옥 변호사는 제4차 세계여성대회, 한국변호사협회 국제업무교류포럼, 하와이에서 열린 IKLA 포럼에 참가해 논문을 발표한 화려한 국제교류경력도 있었고 한국 노무현대통령의 위임식에 유일한 중국 법조계 대표로 참석한 경력도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또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청도시 시남구 10대 변호사라는 영예를 지녔다.
현재 김옥 변호사는 산동성내는 물론 한국, 일본, 대만, EU, 미국 등 국가와 지역의 단체 및 기업의 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상하이, 합비 등지에 사무소를 설립해 중국 일류의, 국제화종합법률사무소를 챙길 알찬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화 특약기자 lihua0718@hanmail.net


날짜 : 2006년 03월 05일 (21시 3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