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병원 왜서 필요할까?
언어소통의 편리, 문화의 차이에 따른 치료 방법
뛰어난 의술이 가장 큰 존재 이유
날짜 : 2011년 09월 28일 (14시 05분)
요즘 세간에서 한국인병원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간단한 클리닉식의 한의원은 칭다오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3층 건물에 건축면적만 4천여 제곱미터에 달하고 내과, 외과, 부인과, 한방중의과, 침구과, 화험실, 초음파실, 물리요법실, 재활센터, 전탁건강서비스 등을 구전히 갖추고 있으며 병실만 43개에 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경, 광파치료기, 견인치료기 등 선진설비까지 가쯘하게 구비한 종합성적인 대형 병원으로는 “한국인병원”이 유일하다.
이제는 위급한 병,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낯설은 대형 병원에 찾아가 몇시간씩 줄을 서고 손이야 발이야 비는 수모를 받지 않아도 된다. 좋은 자기 돈을 팔면서 괜히 여기 저기 사람을 찾아서 부탁하고 불필요하고 억울한 검사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병을 볼 수 있는 곳이 한국인병원이다.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한국인병원의 참신하고 정직한 이미지가 환자의 머리속에 간인되고 있다.
김봉동 원장이 이 병원을 세우게 된 것은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일찍 목단강의학원을 졸업하고 베이징 “301”병원에서 연수를 마친 김원장은 중국과 한국에서 20여 년간 침구술로 많은 환자를 치유하면서 명성을 날렸었다. 90년대말에 칭다오에 진출하여 “선미미”란 대형 민족식당을 운영하면서 조선족기업협회 수석 부회장직도 담임했었던 김원장은 2003년에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면서 큰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때 병문안을 온 한 한국지인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 큰 추동을 주었다. 그 지인의 친구가 일전에 넘어져 간단한 인대손상을 입었는데 병원에서 무조건 X레와 CT검사를 시키고 화험에 임상 실험까지 시켜 숱한 돈을 허비한 건 물론 오히려 병이 가중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다가 인맥까지 없으니 한국인들은 그저 당할 수 밖에 없는가 봅니다. “
그때 김봉동 원장은 자기가 할 일을 새삼스럽게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병원을 이용한 한국인들의 감수도 대개 그랬다. 서울에서 왔다는 심혜경(45)씨는 중국에 와서 우리 말로 신체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갈등까지 남김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일단 신기했다고 기자에게 토로했다. 안면마비로 10여 년간 고생해온 심씨는 그간 심리적인 고통을 여간 겪은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귀국한 친구의 주선으로 한국인병원을 찾아오긴 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익숙한 우리 언어환경에 임하면서 한결 믿음성이 생겼다. 한달 남짓한 치료를 거쳐 눈에 띄우게 호전되고 있다.
중국동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에서 같은 민족끼리만 거래하다보니 대개 중국어에 약했다. 특히 50세 이상 중노년들은 한어가 딸리는 정도뿐 아니였다. 게다가 이역타향에 자리잡아 인맥도 거의 없다. 역시 한국인과 별로 차이없는 약세 군체이기도 했다. 남복덕이라고 부르는 조선족의 경우가 그랬다. 금년에 50세인 남씨는 허리디스크로 여러 해동안 고생해왔다. 모 큰 병원에 찾아가니 의사는 큰 병이 아니라면서 작은 수술을 거치면 나흘내에 완치된다고 구슬렸다. 그런데 정작 수술하고보니 두 다리를 완전히 쓸 수가 없었고 큰소리 탕탕 치던 의사는 오리발을 내밀었고 연대책임이 있는 병원측에서도 이런 저런 핑계와 억지를 내세우며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결국 울며 겨자먹지로 7주만에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한국인병원으로 찾아왔다. 우리 말로 반갑게 맞아주고 가끔 우스개소리도 해주는 김원장으로 인해 마음부터 따스했다. 그렇게 20여 일 침 맞고 남씨는 벽을 짚고 일어설 수 있었으며 한달후에는 한국나들이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한국인병원의 우세는 언어소통만이 아니었다. 민족마다 나름대로 역사와 문화에 따른 생활습관, 음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한민족의 경우 매운 음식을 즐기며 날것을 좋아하고 무침류를 많이 먹는다. 세수도 찬물에 즐겨 하고 냉면 등 찬음식을 자주 찾는다.
“위병을 실례로 들면 한족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쌀밥을 먹지 말고 죽을 끓여 먹으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한민족은 쌀밥에 익숙해져 있어 줄창 죽을 해먹는게 잘 안되지요. 반대로 한의는 밀가루를 적게 먹으라고 권장합니다.”
김원장은 음식문화에 따른 치료 방법도 민족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한다. 식이요법이 아주 중요한 바 음식 습관을 외면한 천편일률적인 치료 방법은 병리 규칙에 부합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주거문화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한민족은 따스한 온돌생활을 선호한다. 집안에서도 신을 신고 다니고 침대생활을 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맨발바람에 바닥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는데 더 습관되어있다. 몸에 병이 오면 냉이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처럼 옷을 두텁게 입고 신발을 꽁꽁 신고 다녀라면 죽어도 못한다. 그래서 민족 습관에 만조록 벽에는 한국벽지를 바르고 바닥은 난방을 깔고 마루를 폈다. 깨끗한 습성에 맞추어 병실마다 화장실을 따로 만들고 옷걸이, 이불장, 티비, 에어컨, 스탠드,서랍장 등을 갖추고 보니 개인집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이 돋보였다.
“이건 그대로 콘도예요. 주방용기만 있으면 그대로 살림을 할 수 있을 만큼 병을 고칠러 왔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조규동(45)씨는 가끔 자기집처럼 생각되어 병원 정원을 다듬고 이런 저런 잡일도 도운다며 엄지를 내밀었다.
청양에서 직원 500여 명을 거느리는 기업인 김사장은 디스크로 고생하는 바이어를 헛일삼아 소개해주어 삼일만에 호전되는 것을 보고 손목 저림을 가끔 호소하는 아내도 보낸다면서 한국인병원의 존재이유를 그래도 뛰어난 의술이라고 먼저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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