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자 심리교실(9)

퇴행(退行)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를 가르치기에 급급한 부모들이 참 많습니다, 이제 겨우 3살되는 아이한테 산수(算数)를 가르치고 삼자경(三字经)을 외우게 하고 외국어도 함께 가르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한동안은 정말 천재라 할 만큼 너무도 잘 따라서 배우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젖먹이 아이처럼 행동합니다. 밥을 먹여줘야 하고 말도 떠듬거리고 툭 하면 큰 소리로 울기만 합니다. 이젠 공부도 안 하겠다고 떼를 씁니다.  아마도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먹고 놀기만 하던 즐거운 아기시절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세살되는 아이의 대뇌는 아직 추리능력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산수를 이해할 수 없고 삼자경의 말뜻도 전혀 이해할 수 없답니다.  그런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반드시 배워야 할 때 사람들은 심한 좌절감과 심리적 고통을 느끼면서 의욕을 상실하고 현실을 도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좌절을 당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긴장하고 불안해지면서 심리적인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심리적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하여 여직껏 살면서 적응하여 온 성숙된 대처방식들을 포기하고 현재 연령의 발전단계와 전혀 맞지 않는 어린 시절의 유치한 행동을 하는 일, 이것이 퇴행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받으면서 심리상 불안함을 해소하는 퇴행방식은 현실을 도피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소극적인 대처방법이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벙법이기도 합니다. 

12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공부하여 온 모범학생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책가방을 집어 던지면서 집에서 밥 먹고 잠만 잔답니다. 먹고 자기만 하던 갓난아기 시절로 돌아간 것입니다.  또 반평생을 오직 가족을 위하여 살아온 엄마가 어느날부터 밥도 하지 않고 근심걱정 없는 아이로 변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랜 시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힘들어질 때 본능적으로 잠간씩 퇴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술에 만취하여 귀가하는 아버지들도 어쩌면 남편,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사느라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기에 잠시나마 고달픈 현실을 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어서 잠간 퇴행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잠간의 퇴행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처방법으로 심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즐거웠던 옛시절로 돌아가서 잠시나마 삶의 번뇌와 고달픔을 잊어버릴 수 있고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우고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재도전을 기약하는 시간과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창모임은 즐거운 퇴행인 것 같습니다. 

옛날 함께 공부했던 학생시절로 돌아가서 동창모임 동안은 모두가 청소년이 됩니다. 청소년시절의 자신의 꿈들을 더듬어보고 그때의 활력을 다시 느껴보기도 합니다. 모두가 함께 퇴행하여 즐겁기만 하고 몸과 마음에 충전하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만일 퇴행이 행동습관이 되고 문제해결 대신 현실을 도피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일상적인 대처방식이 된다면 이런 퇴행은 개인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애하고 불편한 심리증상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퇴행 행위를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퇴행 원인을 본인이 자각(觉察)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깨달았을 때 거대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공부에 힘든 아이들, 잘 살아보려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 살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들, 이것이 삶의 현실인가 봅니다.

“힘들어 죽을것 같다”고 느껴질 때면 잠간씩 퇴행하여 쉬었다 갑시다. 잠시나마 고달픈 현실을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어줍시다, 어쩌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