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음이 외도하지 않도록

구인숙

  



요즘들어 자기소개하는 장소가 부쩍 늘었다.부담이라면 부담이기도 하다.알게 될 사람은 어떻 알게 되고 관심없는 자에게는 아무리 거창하게 자기를 소개한다 한들 이름 석자도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알아가자 주의이다.

자기소개하면 기억 속에서 반석처럼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 굴욕의 스토리가 있다.

20여년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어느날 저녁 학과에서 신입생환영회를 한다며 학년 전원이 강당에 모였다.

나와 룸메이트 몇몇 학생은 기숙사생활 자체가 신이  매사에 앞장서서 다녔다.  그날도 앞줄에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재미나는 일이 있기를 기다렸다.

그날 시간은 마침 신입생들이 서로 알고 지내기 위한 자기소개시간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맨 앞줄에 앉은 학생부터 차례로 자기소개 하는 였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조선족동네에서 자라고 조선족학교를 다닌 나는 솔직히 중국어가 짧은 편이다. 더구나 140여명이 되는 강당에서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은 머리털 나서 처음이다.  순번이 아닌데도 심장이 나올 같았.  와중에도 기특하게 어떻게 하면 유머감있게 소개할 것인가를 열심히 고민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뭔가 그럴듯하게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압도했던  같다.

드디 나의 순서다. 나름 씩씩하게 강단에 올라 중국말로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애써 당당한척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나의 이름은 구인숙입니다. 나는 거인()이 아닙니다. 뚱뚱하고 작~  구체적이라는 구이, 인은 인자하다는 , 숙은 숙녀라는 숙입니다”라고 단숨에 말했다. 잘하려고 티가 났다.

갑자기 관중석이 웅성웅성거리더니 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의 썰렁한 개그가 먹혔나 생각이 정말로 잠깐 스쳐지나갔다.

이때 룸메이트들이 하나같이 소리없는 말로 무엇인가 열심히 에게 사인을 보내왔다. 으쓱했던 기분은 정말로 그렇게 반짝하다 말고 나는 금방 무엇인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룸메이트들이 손짓과 입모양으로 죽기살기로 보내준 사인 덕분이라고 , 우여 끝에 나는 애들이 웃는 이유를 알게 . 강단에 선 나는 긴장한 나머지 물고 있던 껌을 짝짝거리며 씹고 있었 것이. 그 순간 나는 얼굴의 근육이 굳어졌고 몸이 얼어붙었다. 살면서 그때만큼 쥐구멍이 그리운 적은 없었다.

스토리는 언녕 지나간 옛말로 지만 지금도 자기소개  때가 오면    일이 생각나서 혼자 웃곤 한다.  세월 속에서 보듬어진 굴욕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라고 .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자기소개도 시대의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 어릴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알리는 자기소개는 유치원생급으로 듯한 느낌이다.

2년  전문대에 신입생 상대로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특강은 주로 어떻게 대학생활을 잘할 것인가를 다룬 내용이다.

  주제로 먼저 자신을 소개를   무작위로 몇몇 학생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나는 프로필에 젊어보이는 사진을 넣고 한마디로 나를 정의했다.

“커피를 사랑하는 여자, 인본사상을 가지고 있는 여자 ~누구누구입니다.

학생들에게 무척이나 깊이 있게 보이고 싶었나 본다.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 또한 알맹이가 빠진 쭉정이 같아 괜스레 민망감이 밀려온다. 커피야 하고 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인본사상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길래...스스로도 한심한지 쓴웃음이 나온다.

한국에서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성행하던 몇년전, 기존의 삶에서 무엇인가는 바꿔야 한다는 근거없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국에서 강사를 모시고 와서 인성교육을 몇번 조직한 적이 있다.

교육을 받을 때는 정말 그동안 내가 누군 전혀 모르고 살아왔던 것처럼 울컥하는 감정을 억제할 없었다.

인성교육프로그램에서 빠짐없이 하는 것이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높이는 그러루한 내용들이다. 

 때부터 자기소개라는 것에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되었.  때부터 자기소개에 생각치 못했던 수식어들이 붙기 시작했다. 마치도 긍정적인 내용들이 음지생활만 해왔던 것처럼 갑자기 수식어로 빛발쳤다.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 누구누구, 꿀피부를 가진 누구누구, 영화배우 아무개를 닮은 누구누구...아무튼 나쁘지는 않지만 가끔은 스스로도 적응하기 힘들어 닭살이 오르고 오글거릴 때도 있다. 한편 잃어버린 나를 찾기라도 했듯이 마음이 풍성지는  같기도 하다.

허나 개성있게 짜여진 이런 자기소개는 나를 위해 특별히 고안지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뭔가 그려낸 인물 같고 포장된 느낌이다. 스스로도 달통이 안되는 자기소개라면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다 한들 진정한 나자신이 아닐 것이 아닌가?  그것은 그냥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에 불과할 뿐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장소 수요에 따라 저도 모르게 꾸며진 나를 소개할 때가 있다. 부족한 인간인만큼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내 마음이 외도한다.

요즘은 마음이 외도하지 않도록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박하게 소개한다. 유치원생처럼 이름 석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전달하고 꺽꺽거리지만 진솔한 감정을 소개하고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그날의 심정과 함께 나를 표현하려고 한다. 유치하면 유치한대로, 소박하면 소박한대로, 고상하면 고상한대로, 그냥 보이는대로 나를 기억해주기 바라면서 말이다. 

부족함이 풍기지만 나다운 나를 소개하는 것이 인간미가 있지 않을 생각이다.그것 또한 참다운 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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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숙 프로필

197211 료녕성 심양시 출생.

1996 료녕사범대학 외국어과 일본어 전공. 20016 로스팅마스터즈 번역,

2017 연변일보 수필 낮별 발표하면서 등단, 현재까지 수필 다수 발표

현재 로스팅마스터즈커피숍 운영.

연변작가협회 회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겸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