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4월

김신자

 



고향의 5월이 정말 좋았었다. 무거운 솜바지를 벗고나면 날 것 같이 시원해져서 풀려난 송아지떼처럼 동네친구들과 달음박질하며 뛰놀았다. 마을 앞 제방뚝은 민들레가 꽃을 피워 노랗게 단장되였고 학교마당에는 연분홍 살구꽃이 만발했다. 제방뚝 남쪽에서 불어오는 논밭을 갈아 번진 흙냄새, 살구꽃들의 달콤한 향기, 거기에 일꾼들을 위하여 엄마들이 창문을 열어 젖히고 찰지지미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섞이면 5월은 싱그럽고 향기롭고 퐁요로웠다.

5월은 내가 태여난 달이다. 생일날이면 엄마는 아끼던 닭알을 한알 삶아서 주었다. 일년에 생일이 한번만 말고 두세번 있기를 바랬었다. 삶은 닭알이 있어서 5월이 더 좋았었다.

오늘은 4월의 첫날이다. 민들레 꽃들이 벌써 활짝 피였다. 대지에는 온통 노랗고 파란 꽃무늬들로 아롱진다. 며칠 지나면 이제 연분홍 살구꽃도 피여난다. 고향에서 남쪽으로 2천 킬로메터도 더 떨어져 있는 여기는 지금 고향의 5월을 한창 연출하고 있다.

황금처럼 빛나는 개나리는 흐린 날인데도 태양이 나무에 걸린 듯이 주변을 환하고 눈부시게 비추어준다. 어여쁜 녀인의 자태를 자랑하는 흰색, 분홍색, 노란색 목련꽃들은 분명 천사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나무가지에 소복히 내려앉은 모양이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사쿠라 꽃잎은 청아한 것이 보면 볼수록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깨긋해진다. 진록색 잎에 빨간 꽃을 가득 피운 동백꽃 나무는 온 몸에 꽃을 지고 다니는 꽃장수 같다. 이 고장 4월은 여기도 꽃이요, 저기도 꽃이요,  땅에도 나무에도 온통 꽃천지다.

창문을 활활 열어 젖히면 밀려 들어오는 수많은 꽃향기에 마음은 어느새 흠뻑 취한다. 향기로운 계절이다. 향기에 취해 꽃구경 하러 밖으로 달려나온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 몰려 다니는 모습들이 붕붕하며 꽃을 찾는 꿀벌들보다 더 분주하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그윽하고 자애롭기만 하다.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에는 오색찬란한 세계가 그대로 비추어졌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지금 나는 4월이 좋아졌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 고장의 4월이. 그렇다고 고향의 5월이 싫어진 것은 아니다. 꿈 속에서는 여전히 고향의 5월로 달려간다. 손꼽아 헤어보면 나한테 고향의 5월은 철없던 열몇해 뿐이였건만.

여기서 살아온 해수가 래년이면 서른해가 된다, 고향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이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공부하고 일하고 철들며 참 바쁘게 살아왔다, 4월 같은 청춘도 이 고장에 묻었다. 그런데 4월을 느낀지는 고작 서너해 밖에 안된다. 이제야 마음의 눈을 뜬 것이다. 이 고장의 4월을 좋아하면서 비로소 고향의 5월이 생각났다. 여기 새고향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누구와 닮은 고향사람들이 생각났듯이.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좋아하면서 그것을 줍는다. 우리가 새롭게 좋아하는 것들은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숨겨져 있었던 어느 한토막 기억을 노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의 마음의 우주인 것이다.

지금 내가 고장의 4월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내 마음 속에 간직한 고향의 5월을 닮아서일 것이다. 그리고 소꿉친구들이 늘 마음 속에 살고 있어서 어딘가 그들과 닮은 새 친구들이 좋아졌을 것이다.

것이 좋아지는 것은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것이 항상 제자리에 있으면서 추억으로 소생했기에 어딘가 그와 닮은 것이 눈에 안겨오고 마음에 들어서 좋아졌을 것이다. 그러니 그 추억이 아름다우면 새 것도 아름다울 것이다.

저기 목련나무 아래에 아이를 안은 녀인이 마스크를 내려서 택에 걸고는 아이와 함께 꽃향기를 만끽하며 예쁜 꽃을 바라보면서 행복하게 웃고 있다. 저 녀인의 기억 속에는 목련꽃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간직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의 품에 안겨 꽃구경 하던 저 아이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여 아이를 안고 4월의 목련꽃을 행복하게 바라볼 지도 모른다. 내가 삶은 닭알을 먹을 때면 5월의 엄마를 생각하듯이.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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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자 프로필

1968 5 8 흑룡강성 가목사시에서 출생

1992 중국인민대학 행정학원 당안보호학과 졸업 청도시 로산구 대외경제무역추진위원회 근무

1994 청도시외사사무실 파견직원으로 주청도 대한민국총령사관 설립준비에 참여하고 총령사 비서로 근무

1996 7월부터 청도국제은행 근무.

2007 5월에 국제가정교육지도사 자격증 취득, 2015 10 중국과학원 심리연구소 아동발전과 교육심리학 석사과정 졸업

2013 9 ~ 현재 青岛可信心理健康咨中心 대표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