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 편지]

내가 지금까지 흑룡강신문을 보고 있는데는

  

사진설명: 80세 장순진 선생이 흑룡강신문을 보고 있다

 

 

나는 오늘 지난해 12월 25일 (금요일) 부 흑룡강신문 6면 동포네트워크 실린 이계옥 특약기자가 <칭다오에 흑룡강신문 구독 열풍이 불고 있다>란 기사를 읽고 몇년 전에 <내가 지금까지 우리신문을 보고 있는데는>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초고를 다시 정리해본다.

내가 고향에 있을  노인협회에서 <흑룡강신문>, <노년생활> 구독동원좌담회도 조직했었고 좌담회 실기 보도까지 써서 <흑룡강신문> <노년생활> 발표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종이신문을 고집하고 있어 스스로도 너무나 시대에 떨어진  같아 쑥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군 했다. 그래서 때론 “내처럼 세상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만 아직 종이신문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

헌데 생각밖에 “칭다오에서 흑룡강신문 구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하니 이는 나에게 더없는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내가 시대에 떨어진게 아니였구나!) 

그래서 어느 구석에 밀어 놓았던  초고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내가 언제부터 우리 <흑룡강신문> 보기 시작했는지는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에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인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학교 열람실에 가면 눈에 먼저 보이는게 바로 <흑룡강신문>이여서 그날그날 신문을 열독하군 했다. 그 때는 제목만 대충 훑어보고 내용은 별로 보지 않았다.

사업에 참가해서부터는 지금까지 꼭꼭 신문을 주문해서 보고 있다. 물론 그 때는 직장의 명목으로 주문해 보았지만 하여간 내가 가는 곳에는 <흑룡강신문> 없으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교육학원, 노년협회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후 각곳에 초빙되어 한국어 교편을 잡고 있을 때도 학교측에 요구하여 <흑룡강신문>  주문했다. 지금은 물론 내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주문하고 있지만... 그러고보니 내가 우리신문 <흑룡강신문>  역사는 반세기가 넘어 60여년을 이어온 이다.

어째서 <흑룡강신문> 그렇게도 애독하고 있는가고 누가 묻는다면 나도 “어째서?”라는 물음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딱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흑룡강신문> 우리신문이기에 우리가 봐야 한다는 그런 소박한 민족심의 작간이 아닐까 싶다. 또한 신문에는 우리민족의 숨결이 배어있고 우리민족의 발자취가 찍혀있지 않는가.

물론 내가 신문을 즐겨 보는데는 연령단계마다 부동한 동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기자들의 글에서 무엇인가 배우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학생시절부터 나는 신문기자가  그렇게도 부러웠고 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신문사에 가는 것이 나의 꿈이었고 이상이었다. 그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찾아와서 나를 물색까지 하였는데 가정형편이 여의치 못해 끝내 가지 못했다.

민족언어문자사업이 나의 숙명이라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어디에 가나 우리글로  간판만 보면 친절해 보이고 우리글 신문을 받아보노라면 어쩐지 고향의 오랜 친구를 만난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저도몰래 설레이군 한다.

우리글, 얼마나 반갑고 친절한 것인가!

우리신문,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인가!

여기까지 쓰고나니 우리글과 우리신문에 얽히고 설킨 벅찬 이야기들이 주름마처럼 머리기 떠오른다. 그 벅찬 이야기들을 이 글에서  수는 없지만  글을 빌어 조선에서 출판한 <조선고정문학선집>,  <풍요선집> 실린 <한글자랑>이란 한편만 옮겨본다.

 

  한글자랑

세종대왕  우리글이 제정되어 백성들이 한없이 기뻐했다.

신기할  우리글 하늘이 내였는가

열다섯 글에 자음 모음 되들었네

백성들 쓰기 좋은 나라의 보배 천후만대에 공덕 길이 빛나리

 

颂谚文

世宗时制谚文国人利用欢喜

人文神闷发天心

十五行俱子母音

利用永为民国宝

功深万古兴千今

 

우리글과 우리신문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내의 음식 솜씨가 아무리 좋다해도 밥상에 올려 놓았을  맛있게 먹어주지 않고, 글쟁이들이 아무리 글을 멋있게 잘 썼다해도 그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고, 가수가 아무리 노래는 잘하더라도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무용가가 아무리 춤을 춰도 봐주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말재간이 좋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음식이, 그 글이, 그 노래가, 그 춤이, 그 말의 가치가 어떻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음식은 먹어줘야 맛이 나고 옷은 입어야 멋이 나고 노래는 들어줘야 흥이나고 춤은 봐줘야 보고 좋고 글은 읽어줘야만이 가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신문을 받아  때마다 민족의 자호감을 느끼군 한다. 비록 주간지 (원 산동지사) 였지만 신문을 통해 현지 민족사회의 실상을 제시간에 요해할 있어 너무 좋았다.

지금은 본사신문과 더불어 종합, 동포네트워크,  사회문화, “월드고리안, 칼럼 오피니언, 특집  전문란 접할  있어 우리신문 나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나 친구, 충전기, 영양제, 보건품, 윤활제, 향수제와 같은 역할을 놀고 있다.

물론 <흑룡강신문> 구독하면서 불편한 점도 없지 않지만 (일주일후에야 받아 )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3번씩(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나오는 신문을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보고 있다. 즉 나는 지금도 우리글도 씌어진 우리신문을 아껴보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글을 빌어 박영만 사장을 비롯한 장학규 선생, 박영철 기자, 김명숙 기자, 이계옥 특약기자 등 선생님께 허리 굽혀 감은의 인사를 표시한다.

2020년 1월 5일

애독자 장순진

2021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