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사 산동지사 2020 특별기획보도

'나와 골프 이야기' 계열보도 3

            

 

골프 치는 것은 사업 하는 것과 똑 같아요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제9기 회장 윤동범사장의 일가견

  

사진설명: “골프도 사업과 같아요. 부단히 연구발전해야 합니다.” 윤동범사장이 골프경험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칭다오골프계에서 윤동범 회장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다. 라이후()골프팀을 설립하고 칭다오오성(五星)골프회를 창립했으며,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제9기 회장을 역임하면서 고향골프팀 위주의 경기운영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골프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흑룡강성 목릉현 하서향 보흥촌 출신인 윤동범(55) 사장은 일찍 하얼빈기전전과(电专)학교(현재 하얼빈이공대로 합병)를 졸업하고 1994 2월말에 산둥성 옌타이시 소속 라이양(莱阳)시 중한합자회사에 통역으로 초빙되어 왔다. 2년 뒤인 1996 3월에 자체로 400제곱미터의 건물을 임대하여 옌타이경성(京城)복장을 설립하고 와이셔츠를 생산하여 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1999년에는 자체로 66무의 땅을 매입하여 건평이 2만제곱미터, 직원이 1500여명에 달하는 대형 복장공장으로 발전하였다.

  등산복과 와이셔츠, 바지 등 복장을 한국, 미국, 유럽 등 나라로 수출하는데 2015년부터 연속 3년간 연 매출 3억 달러에 달하는 호황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해외 수출 복장공장을 운영하다보니 바이어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자연 골프와 접촉하게 되었다. 윤동범 회장은 새로 공장부지를 사고 공장을 짓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1999년에 바이어들의 권고하에 골프를 배우게 되었다.

  옌타이시와 칭다오시 사이에 위치한 라이양시는 지역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보니 골프연습장 하나 없었다. 그래서 연습도 없이 골프채를 들고 바이어들과 직접 필드에 나선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을 하나 성과를 보고야 마는 것이 윤동범 회장의 성격이다. 사업도 그렇고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골프장에 일찍 가서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라운딩이 끝난 후에도 연습장에 되돌아가 총화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골프 관련 책과 잡지를 구매하여 열독한다. 또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자문을 구한다. 골프를 친지 21년이 된 오늘에도 윤동범 회장은 아직도 자신을 골프초보자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윤동범 회장은 골프를 배운지 5년만에 싱글(80타 이내) 행렬에 들어섰고 라이양, 라이시(西) 지역에서는 골프를 제일 잘 친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1년 윤동범 회장은 라이후골프팀을 창설했다. 라이양, 라이시두 지역에서 골프를 즐기는 조선족, 한국인, 중국인 모두가 참석할수 있는 골프팀을 만든 것이다.

 라이후팀의 골프경기날은 축제분위기를 방불케 한다.  30여명 회원들이 경기를 마치고 와서는 골프를 잘 친 친구에게는 칭찬을, 성적이 차한 회원에게는 격려를 해준다. 모두 술로 대신한다. 상 타러 나온 사람은 무조건 술 한잔씩 마시게 한다. 이렇게 여러 순배를 돌다보면 사람에 취해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어느새 서먹함은 멀리 사라지고 형제간과 같은 끈끈한 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2015 11월 윤동범 회장은 칭다오오성회를 창립했다. 50세 이상의 조선족 골프애호가들을 주축으로 된 골프모임이다. 오성회라는 이름은 오성급 호텔, 오성상장 등 최고급을 대표하는 이름으로서 말 그대로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간 오성회를 이끌어오면서 윤동범 회장은 전국오성회대회에서 거의 모든 우승을 싹쓸이 해왔다.

 2017년 윤동범 회장은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제9기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황민국, 김영숙 등 칭다오 골프원로들의 추천하에 만장일치로 당선된 것이다. 막상 중책을 맡고 보니 난제가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회원들의 적극성 부족이었다.

 골프협회는 여직까지 골프를 즐기는 회원들의 자각적인 참가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개인이나 회사의 일로 경기에 나오지 않아도 별로 대책이 없었다. 사정이 그러다보니 매번 경기에 50여명 좌우가 참석하고 연말대회에야 100명 남짓이 참가하였다.

 여러날을 고민 끝에 윤동범 회장이 내온 대책이 바로 향우회 골프팀 위주로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였다. 10, 20년 정든 고향을 떠나서 낯설고 물선 칭다오땅에서 창업을 하는 기업인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가 고향이 자리잡고 있다. 고향을 위해서 골프를 친다는 것이 영광스럽지 않는가?!

 윤 회장의 아이디어는 각 향우회의 적극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칭다오에서 활약하고 있는 20여개 향우회에서 골프팀을 묶어 참가하게 되었는데 인원수가 적고 실력이 부족한 팀들은 이웃지역끼리 한개 팀을 무어 나오도록 하였다. 흥개호팀(계서, 계동, 밀산, 호림 지역), 목단강팀(녕안, 해림, 목릉 지역), 가목사팀, 상연팀(상지, 연수팀), 수철북팀(수화, 철려, 북안팀), 오상팀, 길교팀(길림, 교하 지역), 통화팀(매하구, 유하, 통화 지역), 요심팀(요녕, 심양 지역), 왕안팀(왕청, 안도 지역), 용정팀 등 11개 팀으로 팀 구성이 재편되었다.

 그 때로부터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는 새로운 확장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각 향우회에서 돌아가면서 월례대회를 조직하였는데 매번 경기에 200여명이 참석하여 “칭다오의 월례대회는 작은 전국대회”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골프열정이 올라가니 성적도 자연히 동반 상승하였다. 윤동범 회장 시기에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는 전국대회에 가서도 성적이 항상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화려한 발전과 성적 뒤에는 윤동범 회장의 물심 양면으로 되는 지원과 노력이 엄청 들어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골프는 사업과 같아요.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납니다.

 코로나19사태에 대비하여 인원모집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성복장에서는 수백만 위안에 자동화 설비를 대폭 구입하였다. 일명 지능화 개인맛춤형 복장생산기기라고 일컫는 이 설비들은 소비자의 주문으로부터 자동 제작 완성되어 집에까지 택배로 배달되는 완스톱 서비스를 실행한다. 캐주얼바지를 자동생산하는 이 시스템은 현재 국내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것으로서 소비자들의 열띤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골프 스윙이 제 몸에 맞는 것이 있듯이 사업도 부단히 변화발전시켜 제 몸에 맞는 것으로 만들어야 가야 합니다.

  윤동범 회장의 경험담이 짙게 묻어있는 말이다.

  / 박영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