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준비된 자세로 기회 노린다 
칭다오윤영고무제품유한회사 김봉 사장
  


김봉 사장은 “기회는 항상 준비된 사람한테 차례진다”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사진은 김 사장이
밀봉 고무제품을 살펴보는 장면이다./본사기자

 


    “하늘에서 떡이 공 떨어지지 않는다”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 칭다오윤영고무제품유한회사 김봉 사장은 11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고를 겪으며 동년시기를 보냈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어머니와 함께 텐진에 진출해 김치장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김치장사를 1년 하다 하얼빈에 ‘둥지’를 틀고 있던 한 조선족기업의 텐진사무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2년후 베이징의 모 여행사로 자리를 옮겼다. 여행사에 근무하면서 많은 고객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좋은 인연을 쌓았다. 2003년 베이징에 사스가 발생해 그가 하던 개인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한국기업들이 칭다오에 대거 진출했는데 지인의 소개로 한국환경설비업체의 현장관리를5개월간 담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김 사장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현장관리직으로 일하면서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 신심이 생겼다. 베이징으로 돌아간 후 김 사장은 아내와 상의한 후 달랑 3000위안을 들고 홀몸으로 재차 칭다오 땅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번에는 창업의 꿈을 안고 다시 칭다오로 오게 되었다.

  당시 김 사장은 “하늘에서 떡이 공 떨어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주변 친구들한테서 돈을 빌려 대기오염을 방지하고 공업폐수를 처리하는 환경공정회사를 설립하고 아파트단지에 사무실 간판을 내걸었다.

  오더를 따기 위해 영업을 직접 뛰었는데 교통비를 절감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녔다. 김 사장은 한번은 칭다오에서 30여 킬로 떨어진 황다오까지 버스를 타고 갔던 적도 있다고 회억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초창기때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기업에서 오더를 받아 환경설비를 설치해주었는데 마무리를 깨끗하게 해주니깐 상대회사에서 일거리가 있으면 계속 찾았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수정해주었다. 한번 거래했던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어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그래서 김 사장은 ‘자신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떡이 공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마 어려서부터 고생을 했던 그가 열심히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겼기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에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닐까.

  2004년 환경회사를 설립했던 첫해에 600만 위안의 생산액을 올렸고 그 이듬해에는 폭발적으로3배 늘어나 1800만 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업체만 상대하다보니 갈수록 길이 좁아졌다. 2006년에는 생산액이 800만 위안으로 뚝 떨어졌다.

 

  아픈만큼 성숙한다

  환경업체의 오더가 줄어들자 마음이 급해난 김사장은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게 되었는데 2007년 합작투자한 것이 실패로 돌아왔다. 게다가 엉뚱한 일에 빠져 여직 벌었던 돈을 거의 날렸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발생해 어려움이 막심했다. 김 사장의 말을 빈다면 쉽게 일하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그래도 김 사장은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두손으로 일하고 두발로 뛰었다. 초장기때 맨몸으로 뛰여다니던 정신으로 되돌아와 제2창업을 시작했다.

  김 사장은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는데 아내의 내조가 컸다고 말한다. 아내는 항상 “당신은 성공할 수 있어요”라며 넓은 마음으로 기다려주었고 정말 힘들 때는 “언젠가는 안되겠어요”라며 고무격려해주었다. 현재 16살짜리 아들과 7살짜리 딸을 두고 있는데 회사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 사장은 당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좋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자책했다.

  김 사장은 두번 다시 이런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인간은 아픈만큼 성숙되는 가부다.

  하늘에서 날고 있는 매가 꿩을 잡는다

  “땅에 앉아 있는 매보다 하늘에서 날고 있는 매가 꿩을 잡는다” 말이 있는데 항상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는 말과 통한다.

  김 사장이 환경공정 사업을 할 때 거래처 공장에서 가공품을 요구했는데 이것 또한 새로운 기회였다. 2010년 처음에는 합작형식으로 기계설비를 가공했는데 얼마후에는 완전 독립했다. 현재 필요한 기계설비는 모두 자체공장에서 가공생산함으로써 자금의 선순환을 형성했다.

  2013년 김 사장한테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전에 환경공정 거래를 했던 모 한국기업에서 자동차 밀봉고무제품을 생산해 현대차와 기아차에 납품하고 있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오더를 달라고 했다. 김 사장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사장이 승낙했다.

  김 사장은 환경공정회사와 기계설비가공공장에서 번 돈을 투자해 3번째 기업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윤영’이라는 고무제품회사가 생겨났고 현대차와 기아차의 2차 밴드가 됐다. 현재 한국기업의 반제품을 가져다 완제품을 만들고 있다.

  김 사장은 중국의 자동차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때문에 향후 5년은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사장은 고무제품생산은 순가공이기때문에 이윤이 적은 단점도 있다고 털어놓으며 기계설비 생산에서 기술혁신을 이루어 모방이 아닌 창의성 노하우기술을 장악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안타갑게 여기며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겠다고 장담했다.

 

  “인연을 쉽게 버리지 말라”

  김 사장은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직원을 형제처럼 생각하라고 말한다. 사장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때문에 직원들도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선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친구’라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물론 훌륭한 친구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조선족들은 한국기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베풀면 등질 일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에는 사무직 직원이 6명 있는데 그 가운데서 3명은 2004년 초창기때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라고 자랑했다.

  김 사장은 성공조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실에 맞게 움직이고 항상 모든 기회를 놓치지 말라. 그리고 항상 상대를 배려하면 복이 돌아온다. 또한 고추장 맛보듯하지 말고 한우물을 파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 사장은 사회봉사도 능력만큼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hljcfb@163.com

 

 

      프로필:

  이름: 김봉(41)

  1973년 생, 요녕성 반금시 출신

  반금조선족중학교 졸업

  1993년-1995년 봄, 하얼빈 모 기업 텐진사무소 근무

  1995년 봄-1999년, 베이징의 모 여행사 근무

  2000-2003년 개인사업

  2004년 칭다오 진출, 칭다오한서환경공정유한회사 설립, 사장

  2010년 한영기계설비공장 설립, 사장

  2013년 11월 칭다오윤영고무제품유한회사 설립,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