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민재단 계렬보도 15

 

 

 

한국이민재단 하얼빈에 가다

안중근의사기념관·정률성기념관 참관

 

 

  한국이민재단 김도균 이사장을 비롯한 대표단 일행이 1월 18일부터 21일까지 항일의 역사가 깊은 하얼빈시를 방문하였다. 

  한국이민재단 김도균 이사장, 채보근 사업본부장, 공존인터내셔널(유) 이진환 대표, 플레이온(PLAT ON) 오학근 대표이사, 한국 디오라마 신언엽 감독 등 일행은 19일 첫 방문지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았다.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는 해여서 이번 방문은 더욱 뜻깊었다.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하얼빈 기차역에 안중근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그날의 총성이 들리는 듯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조선침략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격사한 현장엔 두 사람의 위치를 상징하는 삼각형과 원형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하얼빈조선민족문화관에서 관리하는 안중근 의사(1879-1910) 기념관은 3백여 제곱미터의 크기에 안중근 의사의 동상, 생평 소개, 거사에 관련된 역사자료들이 상세히 보전,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도 애국주의 항일 역사 교양기지로 불리우는 이곳에서 대표단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장렬하게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당시 아시아를 뒤흔든 대형사건이었다. 국민당 집정시기의 당, 정, 군 주요 지도자였던 장개석은 ‘장렬한 한생 천추에 빛나리(壮烈千秋)’라는 제사를 썼고 그의 장남이며 중국국민당 중앙위원회 주석을 지낸 장경국은 안중근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백혈단심(碧血丹心)’이란 제사를 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직을 지낸 김구 선생도 안중근 의사 의거 39주년을 기념하여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에 한걸음 조차도 어지럽히지 말지어다. 오늘 나의 이 발걸음은 윗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로다”는 명구를 남기였다.  

 위대한 민주주의혁명가이며 중화민국임시대통령을 지낸 손중산 선생도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란 추념사를 써서 안중근 의사를 찬양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50여편의 뛰어난 서예작품을 남기였으며 <동양평화론>을 서술하여 아시아 각국은 단결하여 자주 독립을 쟁취하고 아시아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단 성원들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위대한 정신을 높이 받듭니다’, ‘자랑스런 안중근 의사 만세’ 등 방명록을 남기였다. 

김도균 이사장은 방명록에 ‘안중근 의사의 뜻을 이어 받아 평화와 통합의 시대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기였다. 

 이어 방문단 일행은 하얼빈 향방구에 위치해 있는 일본관동군 731부대 죄증전시관을 찾아 세균무기개발, 생체실험 등 야만적인 반인류 반문명과 반윤리의 행실을 감행한 일본군국주의 죄악에 대해 깊이 요해하였다. 

   20일 오전 방문단 일행은 국영 하얼빈엔터테인먼트 서학동 동사장 겸 당위서기(정국장급)의 안내로 유명한 하얼빈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하얼빈시 송화강 북쪽 중심도에 위치해 있는 오페라극장은 1600석과 400석 두개의 극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담한 구상과 뛰어난 곡선미를 자랑하는 건축풍격으로 2016년도에 “세계최고의 문화건축(世界最佳文化建筑)”이라는 미칭을 수여받았다. 

 김도균 이사장은 앞으로 한중 간 문화교류 공연이 이곳 하얼빈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지도록 함께 노력해보자고 했다. 

 연후 대표단은 도리구 안승가(安升街) 85번지에 위치해 있는 하얼빈조선민족예술관을 찾았다. 이곳에는 송화강잡지사, 정률성 인민음악가 기념관과 하얼빈조선민족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일행은 서학동 동사장, 하얼빈조선민족예술관 이춘실 부관장, 송화강잡지사 이호원 주필의 안내로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2층에 전시되어 있는 ‘태양을 향하여’ 인민음악가 정률성 생평사적전시관에는 중국의 걸출한 작곡가이며 인민음악가 칭호를 수여받은 무산계급혁명음악의 개척자의 일원인 정률성 작곡가에 대한 생평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와 ‘조선인민군 군가’를 작곡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나라 군가를 창작한 공로로 ‘군가의 아버지(军歌之父)’로 불리는 정률성 작곡가 전시관에는 한국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서 중국으로 건너와 항일과 혁명사업에 일생을 바친 정률성 작곡가의 일생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정률성 작곡가는 ‘연안송’, ‘우리의 생활 행복하여라’ 등 400여편 불후의 명작을 작곡하였다. 

 정률성 작곡자 전시관 마지막 코스에는 주인공이 작곡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연안송’ 등 노래들을 직접 현장에서 들을 수 있게 설치되어 있다. 발성기에서 장엄하게 뿜어져나오는 ‘연안송’의 노래소리는 당시 중국의 열혈청년들이 이 노래를 들어면서 혁명의 성지 연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듯이 상상시켜 주어 전신의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2006년 7월 1일에 개관한 하얼빈조선민족박물관에는 현지 조선족들이 세세대대로 사용하던 농경용구, 생활용품, 민족복장, 문화예술 관련 320여점의 민속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조선족마을 형성 모습, 생활정경, 민속문화 등 내용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중들에게 친근함과 생동감을 주었다. 

‘송화강’잡지의 이름은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하얼빈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송화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1959년 5월 20일에 창간된 ‘송화강’은 장장 61년의 역사 속에서 북방문단 및 조선족문단에 마멸할 수 없는 큰 공헌을 세웠다.

연후 일행은 흑룡강신문사 한광천 사장과 오찬회동을 가졌다. 

1956년에 설립된 흑룡강신문사는 64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말 신문사로서 흑룡강성 조선족 나아가 중국 조선족 및 한국, 일본, 미국 등 동포들에게도 크나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언론사이다. 한광천 사장은 흑룡강신문사가 최근 구조조정 등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지만 누에가 나비로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소개했다. 

김도균 이사장을 비롯한 대표단 일행은 이번 하얼빈 걸음에 너무나 많은 감동과 공감을 받았다는데 입을 모았다. 

전에 말로만 전해 듣던 안중근, 정률성 등 자랑스러운 인물들을 현장에서 생생한 역사자료를 통해 더욱 깊이 요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고 했다. 또한 시장경제의 물결 속에서 입지가 점차 좁아지는 민족언론과 문화사업에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민족간부들과 일군들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면서 기회가 되면 필요한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표시했다. 

대표단 일행은 이번 걸음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하얼빈빙등, 눈조각, 중앙대가 등 관광지와 명승지를 다니면서 ‘동방의 모스크바’, ‘동방의 빠리’로 불리우는 하얼빈의 역동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하였다.  

/ 박영만 기자

 

사진설명: 한국이민재단 김도균이사장 일행이 하얼빈조선민족예술관 2층에서 정률성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