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시인 별세

가는 길에 미소를 흩뿌리고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김기덕 시인이 27년간 투병끝에 11월 23일 오전 10시 02분에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김기덕(66세) 시인은 길림성 교하시 출신으로 1950년에 출생하여 1972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1982년 연변제1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연변대학 통신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그해 교하시교원연수학교에 교육연구원으로 전근하여 사업했다. 

김 시인은 교학과 교수연구를 하는 분망한 가운데서도  선후 <길림신문>, <중국조선족소년보>  특약기자와 길림성 <교육과 연구>잡지 특약편집으로 있었으며, 1981년 <중국조선족교육잡지>에 <코스모스>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 칭다오에 진출한 김 시인은 뜻하지 않게 파키슨 병에 걸려 지금까지 20여년동안 병마와 싸우면서도 문학 창작의 필을 놓치 않았다. 후기에 와서는 몸이 너무 떨려 키보드를 두드릴 수 없게 되자 아침 7시 무렵 몸떨림이 멈추어지는 반시간 남짓한 시간을 이용하여 창작을 이악스레 견지했다. 

“문학이 남편을 오늘날까지 버티게 한 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부인의 말이다. 

김 시인이 현재까지 중국을 포함하여 한국, 미국 등 국가의 간행물에 발표한 작품은 무려 3천여 편(수)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2002년에 한국에서 시집 <천 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를 출간하고 2016년 요녕민족출판사에 의해 두번째 시집 <미소 200g>이 출판되었다

김 시인은 2001년 <한국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금상을 수상했으며 . 2009년 문학세계 ‘제5회 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7월 연변시가협회 ‘청마문학상’, 그해 12월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연문컵’ 최우수상, 2012년 8월 연변작가협회 ‘가야하’ 시부문 최우수상, 2014년 8월 ‘요녕일보’ 압록강 문학상 시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2008년 8월 14일 한국 YTN 방송국에서 김 시인의 시 <고향길>을 방송했으며 연변라디오방송국에서도 시인의 시를 약 27분 가량 특별 방송하기도 했다. 

김기덕 시인은 문학창작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을뿐만 아니라 칭다오라는 새로운 이주 지역에서 우리민족문학을 꽃 피우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김 시인은 연변작가협회 칭다오창작위원회의 초기 회장단 멤버였으며, 현재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의 모태인 칭다오시조협회, 연해조선족문인회 등 단체의 골간이기도 하였다. 한편 문학신인 양성에 주력하여 많은 작가 시인을 양성해냈다. 

김기덕 시인은 문학 창작은 물론 높은 인격과 곧은 성품과 너른 마음가짐으로 후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김 시인의 별세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문인들의 조문이 이어졌고 어떤 문인방에서는 전문 조문시간을 내어 시인을 기렸다. 

  25일 오전 8시 칭다오시 청양구 샤좡장의사에서 진행된 김시인의 발인식에는 칭다오민족사회 유지와 친지 수십명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시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었다. 이 자리에서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이문혁 회장은 연변작가협회 정봉숙 주석을 비롯한 조선족작가들의 조문을 시인의 가족에 자상하게 전했다.

  / 장학규 특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