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즐기면서 살아야지요

칭다오 조선족 왕언니 김영숙 사장의 골프사랑



칭다오조선족사회에서 진제(金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다. 특히 골프업계에서는 더욱 유명하다. 전국조선족골프대회에 제1기부터 현재까지 한기도 빠짐없이 참가한 몇 안되는 사람에 속하기도 한다. 


신록이 무르익는 지난 6일 기자는 칭다오국제골프장 로비에서 김영숙 사장을 만났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지금 막 라운딩하려고 나가는 참이예요.” 

김영숙 사장의 첫 마디에서 그의 시원시원한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다부진 몸매에 민첩한 몸놀림이 전혀 60을 넘긴 여인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인생은 즐기면서 살아야지요. 골프를 알게 되면서 저의 인생도 바뀌였어요.” 

김영숙 사장은 이렇게 골프와의 인연을 풀어나갔다.


흑룡강성 상지시 출생인 김 여사는 일찍 흑룡강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아성에 위치한 흑룡강성데트론공장(涤纶厂) 부속중학교의 영어교원으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한국행 바람을 타고 91년도에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그의 인생의 궤적을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94년도에 진출한 곳이 아름다운 해변도시 칭다오시이다. 그때로부터 22년간 그는 칭다오에 정이 흠뻑 들어 살아가고 있다. 


칭다오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노래방이다. 당시는 한국인들이 칭다오에 밀려드는 초창기라 여러가지 여건들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한민족이 경영하는 노래방이 여가시간에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세파에 부대끼다보니 어느날 김영숙 사장의 몸에 무리가 왔다.  98년도에 위암직전까지 몸이 망가져 있었다. 한국에서의 수술까지 예약되어 있었으나 칭다오해군요양소에서의 정밀검사를 거쳐 다행히 병세가 병변 이전으로 판단이 났다. 그때로부터 접하게 된 것이 골프운동이었다.


뼈아픈 고통을 지내온 경력이 있기에 골프운동에 대한 애착심이 남달랐다. 1999년도에는 거의 매일이다싶이 골프연습장, 골프장을 찾아다녔는데 그해에 80타를 깨고 싱글을 달성했다. 


골프운동은 지속적으로 심페기능과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이므로 충분한 산소공급을 통한 유산소 운동으로서 체지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한편 자세와 힘조절, 그리고 공에 집중하다보면 엄청난 집중력이 생기기에 집중력강화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매번 골프라운딩하면서 18홀을 치는데 걸어서 운동하면 평균 10킬로의 거리를 걷는 운동도 된다. 일주일에 한번씩 골프를 한다고 계산해도 일년이면 50차,  500킬로의 거리를 걷게 된다. 이 운동을 10년 견지하면 10년 사이에 5000킬로를 걷게 된다. 칭다오에서 광저우까지 걸어서 갔다온 격이 된다. 그러니 몸은 당연히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골프운동을 김영숙 사장은 20년을 견지해오고 있다.


골프로부터 건강을 되찾고나니 일욕심이 났다. 그래서 그후부터는 다른 사업은 다 정리하고 청송관이라는 한식점의 체인점 경영에 올인해왔다.


12년전에 칭다오 쟈스코 대형마트내에 첫번째 가게를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쟈스코대형마트가 어디에 오픈하면 따라가면서 하나둘씩 청송관 분점이 생긴 것이다. 산둥 웨이팡 쟈스코, 웨이하이 쟈스코, 지닝 쟈스토, 즈버 쟈스코, 칭다오 허페이로 쟈스코 등에 입점했다. 그리고 칭다오맥주성 백성그릅 진스(金狮)광장내의 청송관 분점은 오는 4월 28일날에 오픈하고  황다오 쟈스코 청송관 분점은 5월 20일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렇게 청송관 체임 직영점만 8개, 그리고 초창기부터 칭다오시 타이완로에서 운영해오던 전통한식요리집 고바우 식당까지 합계 9개를 통합운영하고 있다. 명년에는 옌타이 쟈스코에 진출할 예정이다. 


지끔까지 은행대출 하나 없이 가게 모두를 직영으로 운영하는 총 300여명 직원의  총사장이면 눈코뜰사이가 없으련만 김영숙 사장의 얼굴에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일은 몰아서 해야 돼요. 여러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집중하여 처리하면 되지요.” 

그래서 김영숙 사장은 하루는 골프, 다음날은 가게업무, 그 다음날은 골프 이렇게 반복이 일상으로 되어 있다. 

“내일(7일) 웨이팡 가게에 출장갑니다. 모레는 골프약속이 되어 있구요.”

일처리능력이 떨어지면 아까운 골프치는 시간까지 다 뺏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힘이 닿는데까지 열심히 살아야지요.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인생철리가 녹아있는 김영숙 사장의 말이다. 


와중에도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에 대한 김영숙 사장의 후원은 계속되었다.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행사에 매년마다 적어서 현금 2만 위안씩 협찬해왔으며 전국골프대회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가해온 몇 안되는 모범생에 속한다. 

“젊은 동생들이 자기의 사재를 털어가면서 골프협회를 위해 노력하는데 제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그래서 금년에 칭다오시조선족골프협회(회장 윤동범)에 3만위안을 쾌척했다. 동시에 이춘범 사장이 리드하는 오성골프회에도 2만 위안을 후원했다. 그것도 남들보다 우선 제1호로 현금을 보내주었다. 여지껏 해오던 일솜씨였다.

이런 김영숙 사장의 호방한 성격에 끌려 칭다오에서는 김 사장을 진제라고 부른다. 

“전에는 이 사람들 남편들하고 골프를 쳤어요. 그러다가 부인들하고 친구가 되었어요.” 


김 사장은 오늘 함께 라운딩하는 세명의 여성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동반라운딩할 장영묵 사장의 부인 이화, 박영권 사장의 부인 조복실, 권기록 사장의 부인 장영순씨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는 저의 두 아들의 친구들도 저보고 진제 진제 해요. 큰 아들 태룡이도 가끔은 저보고 엄마라 하지 않고 진제라고 불러 배꼽을 잡았어요.” 

김영숙 여사는 얼굴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였다.

“골프가 저의 인생입니다.  18홀내내 경기하는 동안 잘될 때와 안될 때 그런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내면서 인생의 18홀을 완주하는 자만이 승리할 것입니다.>>

“나이샷—“


김영숙 사장이 국제골프장 10번 티박스에서 시원한 드라이버를 날렸다. 골프공은 푸른 호수와 파란 하늘, 신록이 무르익는 푸르른 잔디위를 곧바로 비행하다가 200야드되는 곳에 정책했다.


김영숙 사장의 골프인생은 오늘도 이렇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박영만 기자